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판소리 입은 패왕별희… “두 전통이 빚은 새로움에 빠져보시길”

입력 | 2019-03-26 03:00:00

내달 막 올리는 국립창극단 공연… ‘소리꾼 아이돌’ 김준수와 정보권
우희-항우 역 맡아 ‘찰떡 호흡’ 자랑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자부심 느껴”




창극 ‘패왕별희’에서 항우 역을 맡은 정보권(왼쪽)은 “무거운 갑옷 의상을 입고 칼까지 들어야 해 쉬운 동작이 없다”고 했다. 우희 역의 김준수도 “격정적으로 검무를 추다 곧바로 노래를 불러야 해 호흡 조절에 특히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22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 창극단 연습실.

칼을 든 배우들이 연습실을 뛰어다니며 창(唱)을 뿜어냈다. 때론 절제된 동작을 표현하기 위해 파르르 손끝을 떨면서도 몸의 선은 꼿꼿하게 유지했다. 특히 중앙에 서 있는 두 배우가 움직일 때면 대만 경극의 대가인 우싱궈(吳興國) 연출가도 일어나 “따! 따! 따! 딴∼”이라고 박자를 외치며 몸소 경극 리듬을 표현했다.

다음 달 5일 막을 올리는 국립창극단의 ‘패왕별희’에서 항우와 우희를 맡아 막바지 연습 중인 정보권(27)과 김준수(28)를 만났다. ‘패왕별희’는 동명의 대만 경극을 원작으로 창극을 결합해 ‘초한지’의 항우, 유방, 우희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날 처음으로 음악에 맞춘 동작 연습을 끝낸 두 사람은 “경극에선 손동작 하나하나가 다 정해져 있어 모조리 외워야 한다”면서 “힘들 줄은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힘들다”며 웃었다. 이어 “판소리에 경극을 입혀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자 큰 압박”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립창극단원 김준수와 객원 멤버인 정보권은 중앙대 예술대학 1년 차 선후배다. 김준수가 “연인 역할에 몰입해야 해서 가끔 보권이를 ‘여보’라고 부른다”며 장난을 치자, 정보권은 “제발, 밖에선 그러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형·동생 같은 선후배에서 연인을 연기하는 두 사람은 눈빛만으로 의중을 알아챌 정도로 ‘찰떡 호흡’을 뽐낸다.

우희 역할을 맡은 김준수(왼쪽)가 쓰러지자 항우 역할의 정보권이 울음을 터뜨리며 노래하는 모습. 두 배우는 “이 장면에서 가장 공을 들여 감정 연기 호흡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립창극단 제공

원작과 마찬가지로 항우 역할은 ‘남성성의 끝판왕’이며 우희는 ‘여성성의 끝판왕’이다. 정보권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는 항우의 압도적 용맹함을 표현해야 하는데, 충청도 출신이라 그런지 연출의 요구처럼 내면의 기개와 날카로움을 끄집어내기가 쉽지 않다”며 웃었다. 김준수는 “영화 ‘패왕별희’(1993년)에서 장국영이 연기한 우희를 보며 여성의 선을 공부했다”며 “요즘엔 춤 선이 예쁘게 보이도록 다이어트를 할 정도로 힘들지만 누구든 쉽게 할 수 없는 역할인 만큼 더욱 매력적”이라고 답했다. 둘 다 고충을 토로했지만 우 연출은 “대만에서도 찾기 힘든 재목의 배우들”이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숱하게 무대에 오르며 ‘소리꾼 아이돌’이란 별명을 얻은 이들이지만 이번 작품은 큰 도전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창극의 자부심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김준수는 “창극은 어떤 장르도 흡수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정보권은 “내면을 토해내는 창극과 감정의 치우침 없이 모든 동작을 절제하는 경극이 만들어낸 두 전통예술의 시너지 효과가 놀랍다”고 말했다.

두 청년 소리꾼은 창극을 매개로 더 많은 관객과 만나고 싶어 한다. 이들은 “국악, 창극에도 다양한 시도가 있으니 먼저 유튜브에서 공연을 접하다 보면 젊은 세대도 우리 소리에 공감할 것”이라 권했다. 배우로서 개인적 욕심도 덧붙였다. 김준수는 “한국적인 것에 젖어 있었지만 앞으론 현대무용, 힙합 등과 결합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정보권은 “뮤지컬처럼 창극에서도 유명 ‘넘버’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