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에 도전한 이진한 기자의 먹방 전후 위 사진. 초밥 5인분을 먹은 뒤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해보니 위의 부피가 먹기 전보다 30배가량 커졌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동료들은 한결같이 무모한 도전이라고 반대했다. 특히 먹방 이후 3차원(3D)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위를 찍겠다고 하자 많은 양의 방사능 피폭을 우려했다. 3D CT는 한번 찍을 때 X레이 150∼200여 장을 찍을 때와 맞먹는 방사선에 노출된다. 초밥 5인분을 먹은 뒤 3D CT를 두 번 찍었으니 X레이 400여 장을 찍을 때의 방사선에 피폭된 셈이다. 이런 수고를 무릅쓰고 무모한 도전에 나선 이유가 있다(본보 23일자 22면 참조).
바로 아이들이 직접 먹방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아이는 얼굴이 확연히 아파 보이는데도 먹방을 지속했다. 이 아이는 결국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방송에는 ‘재미있게 잘 봤다’ ‘먹는 모습이 귀엽다’ ‘다음번에 치킨 2, 3박스 보낼게’와 같은 응원 메시지가 줄줄이 달렸다.
‘그러다 몸 상한다’ ‘무리하지 마라’와 같은 걱정 어린 댓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최근 아이들의 먹방에는 댓글 쓰기가 금지됐다). 성인 ‘프로 먹방러’야 본인 책임하에 방송을 하는 것이지만 이를 그대로 따라 하는 소아청소년들은 사실상의 ‘자해 행위’에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다.
유튜버는 요즘 아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이다. 그런 유튜브에는 먹방 콘텐츠가 넘쳐난다. 식욕을 자극하는 먹방은 애교 수준이다. 먹고 토하는 내용 등 각종 엽기 먹방까지 등장했다.
유튜브 고객센터에 가면 아동 안전에 관한 5가지 규제 가이드라인이 있다. △미성년자의 성적 대상화(성적 학대 내용) △미성년자와 관련된 유해하거나 위험한 행위 △미성년자의 정신적 고통 유발 △오해를 일으키는 가족용 콘텐츠 △미성년자에 대한 사이버 폭력 및 괴롭힘 등의 내용이 올라오면 신고해 달라는 것이다.
먹방은 이 중 두 번째인 ‘미성년자와 관련된 유해하거나 위험한 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 물론 처벌은 각국 기준에 맞게끔 하도록 돼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먹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데도 보건당국이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7월 폭식 조장 미디어(TV, 인터넷방송 등) 및 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요식업계를 중심으로 ‘식당 규제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 폭식 조장 미디어에 대한 규제가 주춤한 상황이다. 그사이 흡연 못지않게 부작용이 심각할 수 있는 먹방 콘텐츠가 아무런 제약 없이 유통되고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인스타그램에서 자살이나 자해와 관련해 노골적으로 포스팅한 내용들을 퇴출하기로 결정했다. 2017년 영국인 14세 소녀 몰리 러셀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몰리의 아버지인 이언 러셀은 딸이 죽기 직전 인스타그램에서 자해 관련 사진 등을 본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이언은 인스타그램이 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며 문제 제기를 했다.
지체하다가 사고가 난 뒤 뒤늦게 외양간을 고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늦었지만 하루빨리 먹방 가이드라인이 나오길 희망해 본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