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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광양 산단, 한국 경제의 미래를 책임진다

입력 | 2019-03-28 03:00:00

[다시 뛰는 여수-광양]




동북아 석유화학산업 허브인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는 연평균 총생산액이 80조 원, 수출액은 300억 달러에 달하는 한국경제의 디딤돌이다. 여수산단은 밤에 광양만을 환하게 밝히는 불빛 띠로 장관을 이룬다. 여수시 제공

광양만(光陽灣)은 전남 여수와 광양, 순천에 걸쳐 있는 바다다. 동쪽으로 열려 있는 만 입구에 묘도(猫島)가 있다. 광양만은 1969년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까지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어촌이었다. 그런 고즈넉한 풍경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광양만 남쪽 광양항 부두 주변은 정유공장이 들어선 지 50년 만에 동북아시아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여수국가산업단지(여수산단)로 도약했다. 광양만 북쪽 부두 인근은 제철소 건립의 첫 삽을 뜬 지 38년 만에 세계 굴지의 철강산업단지로 발전했다.

연평균 생산액 100조 원이 넘는 여수·광양지역산업단지는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석유화학과 철강산업의 산실이다. 석유화학과 철강산업은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로 인한 보호무역주의 강화, 중국 등의 저가(低價) 물량공세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험난한 파고를 넘기 위해 여수·광양지역 기업들은 기술개발과 투자, 사업 다각화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천혜의 항만 광양만

광양만 주변 여수반도와 경남 남해는 먼 바다에서 밀려드는 거친 풍랑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항만 입구의 묘도도 자연방파제 기능을 한다. 이런 지리적 여건 덕에 광양만 바다는 항상 잔잔하다. 그래서 하역(荷役)작업이 연중 가능하다. 수심 13∼43m의 자연수로가 있어 초대형 선박의 출입이 자유롭다. 말 그대로 천혜의 항만이다.

광양만은 동북아시아 중심에 있는 물류의 중심이기도 하다. 반경 1200km 내에 중국 상하이(上海), 일본 고베(神戶) 등 동북아 주요 항만이 있다. 인구 100만 명 이상인 50여 개 도시가 있다. 광양만은 인구 7억 명이 거주하는 거대한 배후권역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아시아와 북미, 유럽을 연결하는 주요 항로에 있어 물류거점 항만으로 최적이다. 국내 공장으로 들어오는 원유나 광물을 비롯한 원자재를 가장 먼저 반입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러시아 시베리아횡단열차(TSR)나 중국횡단열차(TCR)에 연결할 수 있는 남북철도(TKR)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남북철도가 운행되면 한반도 중국 러시아 유럽을 잇는 대륙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

박복재 전남대 물류통상학부 교수(55)는 “광양만은 석유화학과 철강이라는 기간산업 발전과 해양관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여수·광양산업단지를 통해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주민 생활수준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어둠을 밝히는 여수·광양산단

광양만은 캄캄한 밤을 밝히는 산업의 등불이다. 여수국가산단 3255만 m² 부지에 기업 299곳이 입주해있다. 이들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만 2만3363명. 각종 시설이 집적화한 동북아시아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여수산단의 한 해 생산액은 83조6000억 원이며 수출액은 310억 달러(약 35조900억 원)다.

여수산단에서는 광양항 석유화학부두로 들어오는 원유를 가공해 가솔린, 나프타, 등유, 경유, 윤활유, 중유 등을 만든다. 여수산단에 입주한 GS칼텍스에서 하루 제조하는 가솔린, 등유, 경유 등 각종 유류는 80만 배럴로 국내 정유 처리능력의 27%를 차지한다. LG화학 등에서 제조하는 화학원료 에틸렌의 연간 생산량은 406만 t으로 국내 총생산량의 48%, 남해화학에서 연간 생산하는 비료 136만 t은 국내 총생산량 33%를 각각 차지한다.

1967년 착공한 여수산단은 2년 뒤 GS칼텍스(당시 호남정유) 여수공장이 준공되면서 가동을 시작했다. 1974년까지 여천공업기지로 불리다가 2001년 여수국가산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2014년에는 혁신산업단지로 지정됐다. 산업단지가 조성된 지 50년이 넘다 보니 산업용지, 공업용수, 오·폐수 정화시설 등 각종 인프라가 열악해져 확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여수산단은 석유화학산업의 호황과 불황 사이클을 같이 탄다. 여수산단은 5년 전 유가 하락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내 2∼3년 전에는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석유화학 전문가들은 석유화학사업이 지금보다 더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사업 다각화와 특성화 그리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관영 고려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58)는 “멀리 내다봐야 하는 석유화학산업의 현재 불안요소는 미국 셰일가스 부산물이고 장기적인 불안요인은 국제유가 상승”이라며 “국내 석유화학산업도 사업을 다각화하고 특성화해 국제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GS칼텍스, LG화학을 비롯한 여수산단 14개 기업은 2025년까지 공장을 신설하거나 증축하는 데 10조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국내외에서 밀어닥치는 험난한 경쟁과 불리한 여건의 파도를 선제적 투자와 기술력 개발로 뛰어넘으려는 야심 찬 행보다.

조성준 전남대 화학공학부 교수(50)는 “여수산단 기업의 화학원료 올레핀 제조능력은 선진국과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다양한 공정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수산단이 더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석유화학산업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견고하게 강화하기 위해서는 제2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수산단 기업들이 공장을 새로 짓거나 확장하면서 각종 기반시설은 부족해지는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박용하 여수상공회의소 회장은 “여수산단이 동북아 최고의 석유화학단지로 앞으로도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기반시설 확충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제2의 중화학공업 육성 필요”

여수산단 건너편 광양은 철강도시다. 1981년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들어서면서 어촌에서 철의 마을로 변모했다. 철강도시 광양을 떠받치는 기둥이 바로 포스코 광양제철소다. 지난해 포스코 전체 조강(粗鋼) 생산량 3773만 t(매출액 30조6600억 원) 가운데 광양제철소의 조강 생산량은 2103만t으로 전체의 56%를 차지했다. 그 위용을 짐작할 만하다.

광양제철소는 21km² 부지에 쇳물을 생산하는 고로(高爐) 5기와 쇳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해 강철을 만드는 제강공장 3곳이 있다. 강철을 가공하는 열연공장, 냉연(도금)공장, 후판공장도 가동하고 있다. 광양제철소 공장 51곳은 소품종 대량생산과 자동차 강판 생산에 최적화돼 있다.

광양제철소와 협력회사 직원은 1만5000명에 달한다. 광양 전체 인구가 15만4340명인 것을 감안하면 광양시민 10% 정도가 철강 분야에서 일하는 셈이다. 2015년 국제 철강산업이 불황에 직면할 때 광양제철소는 허리띠를 졸라맸다. 철강 생산의 스마트화 등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는 한편 2차 전지 원료 제조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전남도도 힘을 보태고 있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석유화학 여수산단과 광양제철소를 중심으로 한 항만물류단지에 신소재 산업 등을 적극 유치해 청년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