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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은행 출신 마크롱, 기업 DNA 이식… 佛 철밥통 뜯어고친다

입력 | 2019-03-28 03:00:00

‘공무원 천국’ 바꿀 공공부문 개혁안 확정




‘낡은 프랑스’를 치유하겠다며 사회 전 분야에 칼을 빼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7일 공공부문 개혁안을 최종 확정했다.

이날 ‘공공서비스 대전환’이란 이름으로 제출한 법안의 골자는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직사회를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데 있다. 로스차일드 등 세계적 투자은행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마크롱 대통령은 정체된 공직사회에 역동성을 불어넣기 위해 프로젝트별 계약직 공무원 채용, 공무원 감축, 공무원의 민간기업 임시 파견 등 다양한 인사 혁신을 중심으로 한 개혁을 단행하기로 했다. 정부는 2020년 1월부터 시행될 수 있도록 의회에 6월 말까지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 정부와 민간 벽 허물어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계약직 공무원을 5% 늘렸다. ‘공무원 평생 고용’이란 통념을 깨고 고용 유연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는 이날 법안에서 정부와 민간의 벽을 허무는 각종 제도를 도입했다. 공무원의 부서별 이동도 거의 없는 프랑스에서는 거의 혁명 같은 변화에 가깝다.

우선 고위 공무원직에 새로운 기술이나 역량을 가진 민간인을 대거 계약직으로 뽑을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다. 공무원 시험을 거치면 평생직장이 보장되는 종신직 개념을 버리고 검증된 민간인을 자유롭게 채용해 공직 채용의 풀을 넓히겠다는 뜻이다. 특히 민간기업에서 활용하는 ‘프로젝트 계약직’ 제도 도입이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프랑스 공공기관은 특정 임무를 수행하는 프로젝트별로 최소 1년부터 최장 6년까지 민간인과 계약할 수 있다.

공무원들의 부서 이동도 자유로워진다. 민간기업으로 임시 파견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공무원이 자발적 퇴직 후 민간기업으로 이직하면 원하는 직무교육 및 금전 인센티브도 제공하기로 했다. 각 부처가 개별 공무원의 동의를 얻으면 인사권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단일 협의 체계도 마련했다. 일괄적으로 지급되던 공무원 연봉 역시 개인 성과별로 차등 지급한다. 다만 공무원연금 개혁은 노조 반대로 미뤄졌다.

○ 공무원 수 줄이고, 일은 늘리고

프랑스는 공무원 수와 혜택이 많은데도 업무량은 상대적으로 적어 ‘공무원 천국’으로 불렸다. 지난해 말 공무원 수는 552만5700명으로 전체 국가 고용의 20%에 달했다. 1981년 이후 37년간 전체 인구는 18% 늘었지만 공무원 수는 2배가 넘는 40%가 증가했다.

공무원 근로시간은 주당 35시간으로 연간 1607시간이다. 민간(연 1679시간)보다 적고 독일 공무원(1807시간)보다는 연간 200시간 적다. 지난달 재정감독청(IGF)이 중앙부처 공무원 110만 명을 감사한 결과, 무려 31만 명이 법정 근로시간인 주 35시간보다 적게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IGF는 “공무원 모두가 법정 근로시간을 지키면 3만 명을 줄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IGF는 중앙 부처에서는 ‘장관의 날’, 지자체는 ‘시장의 날’과 지역 축제 등으로 정해진 휴가나 휴일 외에 쉬는 날이 많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예가 ‘장관의 날’ 휴일(2일), 과거 문화장관을 지낸 작가 앙드레 말로를 기념한 ‘말로 주일’(1주일) 등을 쉬는 문화부다. 프랑스 정부는 2022년 말까지 주당 35시간 근무에 방해되는 행사 및 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공무원 감축을 대선 공약으로 걸고 임기를 마치는 2022년까지 공무원 12만 명 감축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감축 규모가 지난해 1660명, 올해도 4164명에 불과하다. 1년간 공무원 개혁 법안을 두고 노조와 논의했지만 합의하지 못했다. 베르나데트 그루아종 교원노조(FSU) 사무총장은 “계약직 노동자를 늘리고, 개인에 따라 보상을 차등화하는 모든 개혁에 반대한다”고 반발했다. 이날 대통령궁 인근에서 법안 반대 시위를 벌인 노조들은 5월 9일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