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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잘 날 없는 전북혁신도시

입력 | 2019-03-29 03:00:00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등 수도권서 이전해온 공공기관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재이전說 솔솔… 분원 설치 주장도 끊이지 않아




전북 전주시와 완주군 경계에 자리한 전북혁신도시에는 수도권에 있던 농촌진흥청과 국민연금공단 등 12개 공공기관이 이전했다. 지역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조성된 전북혁신도시가 재이전설과 분원 설치 주장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북도 제공

전북혁신도시가 바람 잘 날 없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다며 수도권 공공기관이 이전했지만 이 기관들이 지역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지도 못했는데 잊을 만하면 재(再)이전설이 나오고 분원 설치 주장도 끊이지 않고 있다.

28일 전북도에 따르면 경기도는 최근 전북혁신도시에 있는 지방자치인재개발원(옛 지방행정연수원)에 의뢰한 사무관(5급 공무원) 승진 후보자 교육 과정을 경기도 인재개발원에서 자체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행정안전부에 제출했다. 전북혁신도시의 인재개발원에서 교육을 받으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교육 시기가 맞지 않아 인사를 제때 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관련법에는 사무관 승진 후보자 교육은 인재개발원에서 해야 하나 시도지사의 요청에 따라 행안부 장관이 인정하면 자체 교육을 할 수도 있도록 돼 있다.

지난해 인재개발원에서는 사무관 승진자 3858명이 6주 교육을 받았다. 이 가운데 경기도 소속은 611명으로 15.8%를 차지했다. 인재개발원은 연간 전국 공무원 8000여 명이 교육을 받기 위해 인근에서 하숙을 하거나 가까운 전주 시내에 머무르기 때문에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 중에서도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큰 기관으로 꼽힌다. 더 큰 문제는 경기도의 자체 교육 계획을 행안부가 받아들이면 제주 강원 서울 등 전북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자치단체들도 같은 이유로 자체 교육을 하겠다고 나설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전북도의회와 완주군, 전북혁신도시 인근 상가와 하숙집 주인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지난 50여 년간 지방행정연수원이 경기 수원에 있을 때 지방공무원들은 비용과 불편을 감수하고 거기서 교육을 받았다. 이제 와서 경기도가 비효율을 내세우는 것은 지역이기주의”라며 “경기도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이탈 도미노’가 생겨 주변 상권은 붕괴하고 만다”고 주장했다.

전북혁신도시에 있는 한국농수산대는 경북 의성에 영남권 캠퍼스를 설치해 전북에서 거리가 먼 지역의 학생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농수산대는 귀농 열풍과 구직난 등으로 인기가 치솟아 전국 지자체들이 분교를 유치하고 싶어 한다고 알려졌다. 전북은 분교 설치는 본교의 위상과 역할을 크게 훼손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립축산과학원은 최근 충남 천안에 있는 축산자원개발부를 전북이 아닌 전남 함평으로 이전한다는 업무협약을 맺어 농·생명산업 집적화라는 전북혁신도시 이전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전북혁신도시로 옮긴 뒤 기금운용 전문 인력이 빠져나가고 신규 인력 충원도 어렵다는 주장은 계속 논란을 부르고 있다. 전주 이전 후 국민연금 운용 수익률이 떨어졌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지난해에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하려면 돼지 분뇨 냄새를 견뎌야 한다”며 국민연금 사무실이 있는 전북혁신도시의 악취 문제를 꼬집는 기사가 해외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전북도는 기금운용본부 주변을 서울, 부산에 이어 ‘제3 금융 중심지’로 지정받아 호텔과 컨벤션센터를 갖춘 금융서비스 집적센터로 만들 계획이지만 타 지역 반발이 거세다. 부산에서는 “제2 금융 중심지로 지정된 지 10년이 넘은 부산도 기능이 활성화되지 못했는데 금융 인프라도 없는 허허벌판에 무슨 금융 중심지냐”고 주장한다.

전북도 관계자는 “전북혁신도시로 온 공공기관들의 역할과 위상이 축소되면 지역혁신도시가 ‘속 빈 강정’이 돼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취지가 훼손되고 이 기관들을 상대로 생업 기반을 마련한 주민들이 피해를 떠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