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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진의 필적]〈52·끝〉칼을 든 선비 김창숙

입력 | 2019-03-29 03:00:00


10대와 70대의 글씨체가 똑같은 사람이 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의 혹독한 고문과 오랜 감옥생활로 앉은뱅이가 된 심산 김창숙이다. 평생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대의와 지조를 지킨, 선비의 상징적 인물이다. 심산은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의 주동자로 징역 14년을 선고받았다. 임정 때 이승만의 탄핵을 이끌었고 광복 후에는 이승만 ‘하야경고문’을 발표해 이승만의 실정과 독재를 신랄하게 꾸짖었다. 심산은 여든넷의 생애를 온전히 조국의 독립, 통일정부 수립, 반독재 민주화에 바쳤다.

모서리의 강한 각과 마지막 필획이 꺾여서 꽤 길게 올라가는 특징은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의지가 남다름을 말해준다. 심산은 어릴 때부터 성질이 억세고 남에게 지지 않아서 함께 놀던 무리가 모두 꺼려서 피했다고 한다. “역적들을 성토하지 않은 자 또한 역적이다”라고 한 것이나 “나는 포로다. 포로로서 구차하게 살려고 하는 것은 치욕이다. 결코 내 지조를 바꾸어 남에게 변호를 위탁하여 살기를 구하지 않는다”라며 변호사의 변호를 거부한 것을 보면 그의 결기를 알 수 있다.

작은 키의 글씨들이 정사각형을 이뤄서 올바르며 현실감각이 뛰어나고 냉정했음을 알 수 있다. 심산은 “성현이 세상을 구제한 뜻을 모르면 가짜 선비다”라고 말했고 유학 경서를 읽고 거들먹거리는 선비가 아니라 시대악과 처절하게 맞서 싸운 ‘칼을 든 선비’의 길을 갔다. 심산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대궐 앞에서 을사오적의 목을 벨 것을 상소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문 닫고 글만 읽을 때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국채보상운동과 국력자강운동에 뛰어들었고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했다. 정돈성과 규칙성이 두드러지는 것을 보면 말과 행동이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말년에 집 한 채 없이 여관이나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병상에서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지만 심산은 외롭지 않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