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극도로 단조로운 영상인데도 구독자는 4만 명을 넘는다. 2017년 개설 이후 누적 조회수도 400만 건을 넘었다. 일명 ‘스터디 위드 미(Study with me·같이 공부해요)’ 방송이다. 한때 북유럽 한 방송사가 해안가 철로를 달리는 열차 밖을 7시간 동안 찍어서 내보낸 ‘슬로 TV’가 인기를 끌었는데, 공부 생방송은 ‘한국판 슬로 TV’라고 할 법하다.
A 씨는 관종(관심 종자)일까? 아니다. 그는 “남들이 지켜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그 나름의 합리적 이유를 갖고 방송에 임한다. 공부 생방송을 보는 수험생들의 심리도 비슷하다. 공부하려 앉으면 스마트폰으로 딴짓하고 싶어지는데, 스마트폰으로 방송을 켜놓으면 공부에 몰입하고 수험생을 보며 자극받는다는 것이다. 먹방을 보면 먹고 싶어지듯 ‘공방’을 보면 공부하고 싶어진다는 설명이다.
이들 공부 생방송에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시험에서 못 벗어나는 ‘수험사회’ 한국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무원 시험은 물론 교사 임용고시,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 등 다양하지만 수험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두고 판을 벌여 모여드는 이들에게 공부 생방송을 태운 유튜브는 고독(solitude)하게 공부할지언정 외로움(loneliness)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커뮤니티다. 설문조사 업체인 오픈서베이에 따르면 10, 20대는 유튜브를 하는 이유로 ‘댓글 등 다른 사람 반응을 보려고’(각각 56.1%, 48.6%)를 가장 많이 꼽았다. ‘궁금한 내용을 영상으로 보려고’ 유튜브를 하는 40, 50대(각각 61.5%, 70.7%)와는 다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하지 않거나 일하지 못하는 청년이 200만 명에 육박한다. 누군가는 청춘들이 수험 생활에 매달리는 것을 사회적 손실로 보고 누군가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는 이들을 도전적이지 않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민간에 좋은 일자리가 충분치 않고 때때로 채용 비리, 채용 갑질 등이 빚어지는 마당에 학력·학벌에서 차별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그나마 공정한 절차에 도전하는 이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북유럽 슬로 TV의 해안가 풍광이 비좁은 책상 화면으로 치환된 지극히 한국적인 슬로 TV를 보고 안쓰러움이 밀려오는 것도 잠시, 답답하기 그지없는 현실에서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낸 청춘들의 건투를 빌기로 했다. 잘못은 수험사회가 했으니까 말이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