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의 근무시간에 3등 항해사는 선내 시간을 변경하는 일을 한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갈 때에는 시간을 하루에 30분씩 당겨야 한다. 오후 8시를 8시 30분으로 하는 것이다. 나는 당직시간이 4시간에서 3시간 30분으로 줄어드는 점을 좋아라했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23시간 30분이 된다. 물론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반대다. 마스터 시계를 돌리면, 선내 시계는 모두 이에 맞추어 변경된다.
초저녁잠이 많아 이 근무시간대가 힘들었는데, 당직타수들의 입담은 큰 도움이 됐다. 연배가 많은 이들은 인천상륙작전, 베트남전 참전 무용담을 들려줬다. 이야기 밑천이 떨어져 같은 말을 반복해도 처음 듣는 듯 모른 척 넘어가 주기도 했다.
오전 8시부터 낮 12시까지는 3등 항해사의 당직시간이다. 아직 경험이 일천하기에 선장이 선교에 올라와 직접 교육시킨다. 30분마다 태양을 잡아 위치를 구하는 훈련을 받았다. 선장이 0900, 0915, 0930, 0945, 1000 등 15분마다 태양을 잡아 정시에 위치를 구하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너무 밝은 태양을 많이 봐 하선할 무렵 시력이 나빠졌고, 나는 안경잡이가 됐다.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 훈장인 셈이다.
10년 내에 무인선박이 도래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선교에서 행했던 항해술의 발휘, 항해사와 타수들 사이의 애환과 훈훈한 인정의 주고받음이 없어질 것이다. 젊은 시절 바다에서의 추억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