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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에 뿌리내린 한국 금융맨… 될성부른 기업 직접 키운다

입력 | 2019-03-29 03:00:00

[동아일보 100년 맞이 기획 / New 아세안 실크로드]
1부 아세안의 금융 코리아 <1> 한국도 이제 ‘금융 수출국’




21일 베트남 호찌민 도심의 스타트업 ‘업업앱’의 사무실. 영어, 베트남어, 프랑스어가 곳곳에서 들렸다. 한쪽에서는 이 회사의 매니저 톰 히츠 씨가 직원 10여 명을 모아 놓고 영어로 영업 직원들을 교육하고 있었다. 업업앱은 기업 직원들의 업무를 독려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상사가 앱에 일상 업무에 관한 직원별 과제를 등록한 뒤 직원들이 이를 완수하면 커피 쿠폰, 휴무 등 각종 보상 내용이 앱에 뜬다. 호주인, 필리핀인, 프랑스인 창업자들은 2년 전 호찌민에서 의기투합해 이런 사업을 시작했다. 일자리가 늘어나는 베트남에선 직원 이직률이 높아 경영자들의 고민이 많기 때문이다.

이 스타트업에 공유 사무실과 전문가 자문단을 무료로 지원하는 후원자는 베트남도, 호주도 아닌 한국의 신한은행이다. 스타트업 지원기구 ‘신한퓨처스랩’은 지난해 베트남 스타트업 6곳을 선발해 지원하고 있다. 폴 에스피나스 업업앱 대표는 “신한은행이 베트남 거래처를 소개해준 덕에 고객사가 늘었다”며 “은행 직원들의 멘토링 덕에 직원 수가 1년여 만에 12명에서 42명으로 늘 정도로 회사가 성장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도 역동적인 베트남 스타트업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부지런히 빨아들이고 있다. 김선일 신한퓨처스랩 차장은 “이들의 사업을 보면서 우리도 새 사업모델을 구상한다”고 했다.

○ 한국 금융, 본격적인 수출 산업화

한국 금융회사들은 아세안 국가의 현지인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현지 진출 한국 기업이나 교민에만 목매던 영업은 옛말이다. 단순히 한국계 제조업체 공장들에 금융·외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현지인과 기업들을 상대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한국 금융회사들이 아세안 지역에서 ‘동남아판 씨티은행’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증권사들도 아세안 시장에서 기업공개(IPO), 파생상품 판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실제 이 지역에서 한국 금융사의 실적은 꾸준히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은행이 인도네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등 아세안 국가에서 벌어들인 순이익은 2억6610만 달러(약 3033억 원)로, 전체 해외점포 순이익(9억8280만 달러)의 약 27%였다.

한국 금융사들의 영업력은 유능한 현지인 인재들에게서 나온다. NH투자증권의 인도네시아 법인인 NH코린도증권 조경훈 대리는 “현지인 직원이 이곳 기업의 역사와 평판을 잘 설명해주고 고객이 원하는 투자 포인트를 파악해 제시해준다”고 했다.

한국투자증권 베트남 법인인 키스베트남은 유능한 베트남 인재를 선점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하노이, 호찌민 명문 대학들을 드나든다. 대학 내 주식투자 동아리를 찾아가 회사를 설명하며 우수한 학생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박원상 키스베트남 법인장은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우수한 베트남인 직원을 뽑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인도네시아 법인 우리소다라의 오재호 사업지원부장은 “대부분의 금융사가 현지인과 한국 직원이 영어로 소통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인도네시아어로 회의를 진행한다”며 “조직 융합을 위해 인도네시아 관습과 언어를 숙지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 현지 거래기업이 영업 도와주는 ‘지원군’ 역할

22일 호찌민 외곽에 있는 베트남 1위 자동차 브랜드 ‘타코’ 빈타인지점의 한가운데에는 베트남어로 신한은행의 자동차 대출(오토론) 광고판이 서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에어컨 판매사업자 응우옌히우쭝 씨(37)는 최근 차량 구입을 망설이다 결국 구매계약서에 서명했다. 타코 판매 직원이 신한은행의 자동차 대출로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소개했기 때문. 그는 “대형 자동차 브랜드의 베트남인 직원이 신한은행을 소개하니 믿을 만하더라”며 “덕분에 월 금리 0.75%에 3억5000만 동(약 1715만 원)을 빌렸다”고 했다.

신한은행이 거래처인 타코의 지원을 얻은 건 장기간 쌓아온 신뢰 덕이다. 김휘진 신한베트남은행 본부장은 “타코에 저렴한 가격으로 자동차부품, 타이어 등을 납품할 한국 기업을 소개해 신뢰를 얻었다”며 “그러다 보니 타코 측에서 ‘자동차 대출을 해보면 어떠냐’고 아이디어를 줬다”고 했다. 이처럼 타코 같은 현지 기업은 한국의 은행들에 시장 확장에 필요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세안 소비자들이 역사적으로 갈등이 많던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에 호감이 높은 만큼 한국 기업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세안 시장은 미국 및 유럽계 은행이 아직 주목하지 못하는 틈새시장”이라며 “다만 은행들이 같은 지역에 우르르 몰려갈 게 아니라 사업성을 면밀히 분석해 경쟁력 있는 분야로 진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한국 금융사, 보수도 좋고 근무 만족도 높아”

“한국 금융회사는 시스템은 물론이고 영업 방식, 조직 문화까지 모두 선진국 수준인 것 같아요. 이 파란 유니폼도 마음에 듭니다.”

우리파이낸스 미얀마법인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아퀸퀸수 씨(26·여)는 한국 금융사의 장점을 묻자 밝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는 그는 “한국인들의 특징인 부지런함이 회사 분위기에도 반영돼 있다. 보수도 좋고 직원에 대한 평가도 공정해 만족한다”고 말했다.

한국계 금융사들이 아세안 진출을 확대하고 시장 영향력도 커지면서 현지인들로부터도 선망받는 직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 분야는 질 좋은 일자리로 분류되는 만큼 한국 금융사들의 진출은 현지에서도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아세안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낮은 미얀마에는 한국 금융사들이 마이크로파이낸스(소액 대출) 위주로 진출해 있다. KB금융그룹, 우리금융그룹 등 13개사가 영업하고 있다. 한국계 금융사들은 미얀마 최저 월급 110달러(약 12만5000원)의 5∼10배를 주고 현지인들을 고용하고 있어 인기가 좋다.

김종희 농협파이낸스 미얀마법인장은 “한국계 금융사의 현지인 채용 인원은 2500명이 넘는다. 이곳 정부도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한국 금융사들에 고마움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情)을 소중히 여기고 직원들을 가족처럼 여기는 한국 기업의 문화가 아세안 지역 구직자들에게 호감을 주기도 한다. 안정균 우리파이낸스 미얀마법인장은 “직원 상당수가 참여하는 여행 등 단체 행사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앙그레아니 스와티안 미래에셋 인도네시아법인 선임매니저(34)는 “한국 금융사는 직원들에게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데 적극적이다. 개인적으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다”라고 했다.

까우비엣안 신한베트남은행 호찌민지점장(47)은 “호주뉴질랜드은행(ANZ),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등 외국계 은행을 다녀봤는데 아시아권인 한국 문화가 이 지역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다”고 했다.

한국 금융사들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는 능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캄보디아 PPC뱅크의 이진영 이사는 “한국계 금융사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용할 매뉴얼이 많다”며 “현지 직원들이나 당국자들이 이런 면에 놀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하노이·호찌민=조은아, 자카르타=송충현,
양곤·프놈펜=이건혁,호찌민·프놈펜=최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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