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 기초학력미달 급증
“자유학기제 같은 현 교육정책이 애들을 바보로 만드는 것 같아요. 공부도 안 가르치고, 시험도 없애 버리고….” 중고교생 두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 이모 씨(45)의 하소연이다.
중고교생의 수학과목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10%대로 치솟으면서 학력 저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기초학력 저하를 방관했다’는 학부모들의 비판이 거세다. 그러나 교육부는 정확한 학력 저하 원인조차 진단하지 못한 채 땜질 처방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기초학력 미달자, 남학생·비도시 많아
성별과 지역에 따라 학업성취 차이도 크게 나타났다. 여중생의 영어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3.3%로 남학생(7.2%)보다 3.9%포인트 낮았다. 국어 기초학력 미달 비율도 여학생(2.2%)이 남학생(6.5%)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남녀 간 차이는 고교생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고2 여학생의 국어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1.6%로 남학생(5.2%)보다 낮고 영어도 3.3%로 남학생(8.9%)보다 낮았다. 수학 미달 비율 역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약 3%포인트 낮았다. 또 전반적으로 도시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농산어촌보다 낮게 나왔다.
교육부는 이날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려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조사 방식에 따른 차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배동인 교육부 교육기회보장과장은 “표집에서 전수조사로 바뀐 2008년엔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가 2010년 학교별 성취도가 공시된 이후 미달률이 줄었다”고 말했다. 각 학교의 평가 결과가 공개되면서 학생들의 성적 끌어올리기 경쟁이 치열해진 결과 기초학력 미달자가 줄었다는 얘기다.
학생 표본을 뽑아 조사하는 ‘표집 방식’으로 바뀐 2017년부터는 다시 성취도가 낮게 나타났다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전국적으로 같은 날 동일한 시험지로 치르는 일제고사였지만 평가 결과가 학교 간 서열화와 경쟁을 과열시킨다는 시도교육청의 건의에 따라 2017년부터 표집 방식으로 변경됐다.
○ “시험 방식이 문제” vs “실제로 학력 저하“
그러나 교육당국의 이런 분석은 학력 저하의 늪에 빠진 중고교생들의 현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교육계는 평가하고 있다. 학력 저하의 근본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시험 방식’을 탓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실제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중고교생 학력 저하의 원인을 진보 교육감 시대가 열린 2014년부터 ‘학업 부담 줄이기’를 명분으로 교과학습을 경시한 교육 방식에서 찾는다.
이번 학업성취도 평가의 대상이었던 중고교생은 숙제와 시험이 없는 환경 속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특히 2013년부터 내신시험을 보지 않고 진로 탐색의 시간을 갖는 ‘자유학기제’가 중학교 1학년에게 도입되면서 학생들은 점점 더 평가에서 멀어졌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습득한 지식은 주기적으로 ‘인출’해야 오래 기억할 수 있다”며 “지식평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시험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다 보니 학생들이 인출할 기회를 놓치고 학력도 저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교육 전문가는 “머리에 기본 지식이 있어야 창의적 토론 수업도 가능한 것”이라며 “학업성취는 학교 본연의 역할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 ‘맹탕 재탕’ 기초학력 지원대책
그러나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교별로 다른 평가도구를 적용하기보다 국가 단위의 시험으로 기초학력 미달 실태를 파악하고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맞춤형 교육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또 초교생들의 기초학력을 높이기 위해 초등학교 저학년의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 집중 학습지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로 했다. ‘한글 또박또박’ 등 문장 해석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지원할 계획이다. 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 관계자는 “사실상 기존 시도교육청에서 해 온 기초학력 지원 사업을 되풀이한 수준”이라며 “기초학력 미달자를 줄이는 근본적 해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수연 sykim@donga.com·조유라·사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