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
젤 작은 집분이네 오막살이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이 아름답고 짧은 시조를 지은 이는 백수(白水) 정완영 시인이다.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로 끝나는 시조 ‘조국’이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기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단 하나의 작품으로 대표될 수 없을 만큼 큰 시인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시인 박재삼은 그에 대해 ‘한국 시조의 종장’이라 표현한 적이 있다. 가람 이병기와 노산 이은상 시인이 한국 근대 시조의 초석을 마련했고, 초정 김상옥과 이호우 시인이 기둥을 세웠으며 마침내 정완영 시인이 완성했다는 것이다.
시인은 시조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을 뿐만 아니라 이 땅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 특히 남달랐다. 그의 자서전을 읽다 보면 3·1운동의 해에 태어난 탄생부터가 운명이었고 생의 어느 순간에서도 우리 민족을 잊은 적이 없었다. 시인의 술회에 의하면 위대한 시인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았다. 그의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자존심과 가풍이 시인에게 깃들었고 나라가 망한 이후에도 대한의 정신을 가르쳤던 무명의 선생들이 있었다. 정완영 시인은 일본인 교장이 올까 봐 교실 문을 잠가놓고 우리글 우리 문학을 가르쳐준 자신의 선생님들을 평생 기억했다.
정말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아는 마음이 이 시를 만들었다. 분이네 집은 동네에서 제일 작고 아마 살림도 재산도 보잘것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가장 훌륭한 살구나무를 그 집에서 찾아냈다. 동시에 세상 가장 초라한 집은 가장 아름다운 대궐이 되었다.
봄은 살구꽃과 함께 찾아온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봄은 어떻게 찾아올까. 분이네 오막에서 초라함 대신 살구나무를 발견하는 데서 찾아온다. 이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