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살아남은 아이
심재명 영화사 명필름 대표
그러나 부부와 기현의 관계는 한바탕 따뜻하고 흥겨운 한낮의 소풍 이후로 끝나버린다. 세 사람의 관계를 깨는 것은 바로 기현의 죄책감이다. 소년의 죄책감은 진실을 말하고 만다. ‘모든 것은 거짓말이에요. 나는 당신들의 아들을 죽이고 사건을 숨기려 했던 무리 중 주모자’라고 실토한다. 이제 부부의 시간은 지옥이 된다.
상실의 슬픔을 애써 견뎌냈던 것은 아들의 죽음이 의인의 행동으로 칭송받고 그것이 주는 한 줌의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아들이 살려냈다고 믿은 소년을 새삼 돌봄으로써 치유의 시간이 허락되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죄책감이 부른 진실은 부부 앞에 더 큰 고통의 시간을 가져다준다. 가해자들에 대한 공소장 제출은 불기소 처리되고 사건 현장에 있던 은찬의 친구들은 침묵하며 경찰은 증언이나 증거물 수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학교는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져 시끄러워지는 것이 못내 부담스럽다. 누구도 증언하지 않은 채 진실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아들 보상금이 얼마냐?’ ‘잘됐다. 이제 괜찮아’ ‘그만하면 됐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성철은 되묻는다. ‘뭘 그만둬? 한 것도 없는데….’
신동석 감독의 장편 데뷔작 ‘살아남은 아이’는 죽음을 둘러싼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상실과 슬픔의 소용돌이를 겪는 사람들의 감정을 좇는 영화다. 너무 다가서지도, 너무 물러서지도 않는 연출의 거리감은 요즘 과잉 영화들과 다르다. 아들의 죽음에서 모든 것이 출발하는 이야기이면서도 그 죽음을 플래시백으로 불러내지 않는 영화의 태도가 담대하다. 2018년 개봉해 비교적 초라한 흥행 성적표를 받았지만 대신 많은 영화제에 초청됐다.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주제와 메시지를 세월호 사건과 연결하지 않았으나 나는 포스트 세월호 영화로도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곧 세월호 참사 5주년이어서 이 영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심재명 영화사 명필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