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불과 두 달 남짓, 자유한국당의 변신이 놀랍다. 불편하게 잡고 있던 ‘박용진 3법’을 놔버리는 결정이나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서의 모습에 자신감이 묻어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는 이제 눈길도 주지 않는다. 황교안 전 총리가 극우 세력의 도움으로 대표로 선출된 후 오히려 우경화가 강화되었다. 2년여 전 죄인으로 무릎 꿇었던 박근혜 정권의 적자들은 옛 모습 그대로 당무에 복귀했다. 올해 1월의 한국당은 과거에 대한 통렬한 반성 의지를 말로나마 보였었다. 제2기 혁신위원회의 혁신안에는 신(新)보수가 지향하는 철학과 과감한 실천 방안이 제시되었다. 그래서 1월과 3월의 한국당은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떤 게 진짜인가?
더불어민주당의 퇴행도 만만치 않다. 전방위적 개혁 정책은 지지부진하거나 그 초심을 잃었다. 대북 행보에서는 저돌적이지만, 재벌의 편법 증여나 갑질은 여전히 금기의 성역이다. 진보 정권이 이민자와 소수자에게 이토록 무관심하다는 걸 믿기 어렵다. 환경정책도 이슈에 따라 그 철학과 논리가 달라진다. 경제 논리를 앞세우기도 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희생을 강조하기도 한다. 정책 설계와 성과에 대한 합리적 비판에조차 한국당과의 비교우위를 내세운다. 수백만의 촛불이 부여한 권력을 잡고서 고작 박근혜 정권보다 덜 못하는 데 자위하고만 있을 건가? 청와대와 여당의 시야가 여의도 정치에 갇혀 있으니 상대 당보다 조금 잘하면 성공이라고 믿나? 여의도에서 울리는 승전가가 국민의 신음으로 변하는 게 보이지 않는가?
민주당과 한국당이 게을러도 되는 이유는 확고한 지지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1998년 이후 진보와 보수는 국정을 10년씩 번갈아 맡았고, 선거 승리와 국정 실패를 교대했으나 그때의 주역들은 어김없이 재등장하곤 했다. 최근 한국당의 우경화와 민주당의 퇴행도 그 불변의 진리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유권자들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 무당파층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성균관대 한국종합사회조사에 따르면, 2010년 이후 무당파층은 항상 2위 정당의 지지자보다 많았다. 정당이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다른 당만 누르면 된다는 소아적 자세를 유지하는 한 유권자의 정치 이탈은 가속화될 것이다. 무당파층이 다수인 정치 지형에서는 표를 조금이라도 더 얻을 수 있는 자극적 공약과 공허한 약속이 난무할 것이다.
이념에 기반해야 하는 진영논리가 이념을 지워버리는 주객전도는 두 정당의 철학과 콘텐츠를 부실하게 만든다. 어쩌면 한국당의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상대 진영의 실기로 온 기회를 극우몰이로 허비한다면 더 큰 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 탄핵 이후 기다린 2년보다 더 긴 시간을 존재가 목표인 싸움에만 써야 할 수도 있다. 여당도 10년 만에 찾아온 두 번째 기회에서조차 혁신의 기회를 놓친다면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진영논리를 이념논쟁으로 극복해야 할 때다.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