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봄철의 쑥은 예부터 건강에 좋은 자연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쑥떡, 쑥밥, 쑥범벅, 된장국…, 밥상에 쑥 향이 퍼지면 그때가 곧 봄이었다. 봄의 귀한 전령사였던 셈이다. 쑥을 먹고서야 겨우내 움츠렸던 인체는 활기를 찾았다.
쑥에는 양적(陽的)인 기운이 넘쳐흐른다. 조상들이 삼월삼짇날이나 단오 등 양기가 가장 성한 날을 골라 쑥을 뜯어 말린 것도 그 양적 본성을 더욱 북돋우기 위해서다. 양기가 성한 만큼 쑥은 인체를 따뜻하게 데워준다. 그래서 양기가 부족한 여성들에게 특히 좋다. 불임, 임신 중 하혈, 냉대하 등에 쑥을 오랫동안 고아 엿처럼 달인 고(膏)를 복용하거나 탕으로 달여 먹어도 효과가 크다. 쑥뜸의 한자는 구(灸)로 차게 식은 몸을 불로 달군다는 의미다. 쑥은 오랜 병으로 지친 인체를 따뜻한 양기로 북돋우는 보일러 같은 존재다. 그만큼 양적인 기운이 강하다. 뜸을 뜨는 재료로 쑥이 쓰이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쑥은 속을 따뜻하게 하고 냉기를 없애며 습기를 말려준다. 기혈을 다스리고 자궁을 따뜻하게 하며 모든 출혈을 멎게 한다. 배를 따뜻하게 하고 경락을 고르게 하며 태아를 편하게 한다.”
요즘 말로 하면 ‘건강염려증’이 있었던 영조는 쑥으로 복대를 만들어 배를 감싸고 다니기도 했다. 영조 37년 승정원일기를 보면 소화불량과 어지럼증에 자주 시달리던 영조에게 의관들은 쑥 복대를 권한다. 의관들은 영조의 이런 증상들이 몸이 차가워져 생긴 것으로 판단하고 쑥 복대를 착안했다. 쑥의 뜨거운 기운으로 배를 따뜻하게 데울 심산이었다. 쑥 복대를 찬 후 영조는 “음식 맛도 좋아지고 어지럼증도 회복되었다”며 좋아한다. 왕실에서는 쑥떡의 일종인 ‘청애단자’를 만들어 약식으로 먹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쑥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근래에 이르기까지 산촌에선 배앓이와 설사를 치료하는 가정상비약으로 쓰이기도 했다.
사실 쑥은 한민족의 생존에 도움을 준 대표적 구황음식이기도 하다. 세종 29년 평안도 상원군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17명에 이르자 의관들은 “쑥 잎과 그 열매를 따 쌀과 소금을 물에 끓여 죽을 쒀 먹이면 흉년을 구제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언한다. 영조 때 재야 지식인이었던 성호 이익은 자신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쑥은 향긋한 별미의 음식이고 많은 병을 낫게 하는 풀”이라고 소개하면서 “조선사의 명맥을 잇게 하는 일등공신”이라고까지 했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