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이스’에서 전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오른쪽)는 실세 부통령 딕 체니에게 밀려 백악관의 허수아비처럼 그려진다. 콘텐츠판다 제공
미국 전 부통령 딕 체니(크리스천 베일)의 부인 린 체니(에이미 애덤스)의 말처럼 우리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 ‘바이스’를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바이스’는 대통령보다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부통령 딕 체니의 일대기를 담았다.
애덤 매케이 감독은 전작 ‘빅쇼트’(2016년)에서 2008년 세계를 뒤흔든 금융 위기의 뒷얘기를 그리며 미국 경제의 허상을 폭로했다. ‘빅쇼트’가 미국 금융 산업이 실은 거대한 거품이라는 것을 한 편의 사기극을 보는 것처럼 표현했다면 ‘바이스’는 체니 개인의 일대기를 통해 미국 정치 심장부의 부끄러운 민낯을 그렸다.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기회를 엿보는 유령 같은 인물로 묘사된 체니와 그의 권력에 붙은 실세들이 평범한 이들의 삶을 뒤바꿀 엄청난 결정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리는 과정이 한 편의 블랙코미디로 묘사됐다.
풍자와 유머는 감독의 전작보다 훨씬 대담해졌다. 체니가 부통령직을 수락하며 조지 W 부시(샘 록웰)와 담판을 짓는 장면은 와이오밍에서 낚시를 즐기던 자연인 체니의 모습과 교차되며 체니가 던지는 미끼를 덥석 무는 부시를 더욱 바보처럼 보이게 만든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딕 체니가 동성애자인 딸을 위해 정계를 은퇴했더라면’이란 질문에 대답하듯 영화 중간 평화로운 음악과 함께 엔딩 자막이 올라가기도 한다.
체니 역을 위해 20kg을 찌우고 5시간이 넘는 분장을 감내한 베일과 애덤스 간 연기 합이 일품이다. 11일 개봉. ★★★(별 5개 만점)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