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위에 공무원, 규제공화국에 내일은 없다] <1> ‘복지부동’ 벽에 막힌 규제혁파… 벤처 대표의 외로운 싸움
한쪽 벽 가득 채운 공무원과 주고받은 공문 지난달 27일 경기 수원시 광교에서 만난 블루투스 전자저울 업체 그린스케일의 설완석 대표가 2015년 10월부터 각 부처 공무원과 주고받은 공문들을 보며 허탈해하고 있다. 그린스케일은 박근혜 정부의 ‘임시허가 1호’ 기업으로 선정됐지만 약 3년 5개월 동안 관련 기술 규범이 마련되지 않아 빚더미(5억 원)에 앉았다. 수원=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난달 27일 만난 그린스케일의 설완석 대표(50)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낼 네 번째 탄원서를 작성 중이었다. 그 탄원서 첫 장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설 대표는 기자에게 각 부처 공무원과 주고받은 서류들을 보여줬다. “규제 혁파를 하자는 대통령 뜻에 따라 최초로 임시 허가까지 받은 기술이었다. 그러나 3년 5개월이 지난 지금 내게 남은 건 정식 사업은커녕 공무원 명함 200여 장과 빚 5억 원, 체납 독촉장뿐이다.”
그린스케일이 2015년 10월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로부터 ‘임시 허가 1호 기업’으로 선정됐을 때만 해도 그는 “정부가 나서서 고속도로를 깔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물웅덩이였다.
블루투스 전자저울인 ‘대풍이’는 농산물을 저울에 올려놓으면 앱을 통해 무게, 산지 정보를 확인하고, 농산물 구매 및 결제를 할 수 있는 정보통신기술(ICT)이었다. PC방을 접고 2011년 창업을 한 설 대표는 2012년 기술 개발을 시작하며 저울 제조를 맡아줄 파트너 기업도 찾았다. 당시 이 기업은 기술에 대한 법적 근거를 요구했다. 현 계량법에는 저울에서 스마트 기기로 데이터를 전송할 때 오류가 생기면 이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법령상 규정이 없어 사업에 어려움을 겪던 설 대표에게 임시 허가제는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임시 허가제의 목적은 허가 기간 동안 정부 관련 부처가 협의해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규율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팔려고 보니 임시 허가는 무용지물이었다. 한 도청에서는 “정식 허가가 있어야만 예산 책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임시 허가 기간 만료일이 다가왔지만 정식 허가와 기술 기준 마련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공무원은 그때부터 ‘규제 본색’을 드러냈다. 특히 미래부가 소관 부처로 지정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국표원)과 농림축산식품부는 비협조적이었다. 국표원에 여러 차례 공문을 보낸 끝에 얻어낸 답변은 “통신 관련 사안이니 과학기술정보통신부(옛 미래부) 업무다” “국제기준과 동향을 살펴 장기적으로 필요성을 검토할 것” 등이었다.
현재까지도 국표원은 “임시 허가 당시 블루투스 저울에 대한 형식 승인은 받았으니 판매는 문제가 없다. 관련 기술 기준은 검토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답하고 있다. 설 대표는 “산업부 감사관실, 국민권익위원회, 국무조정실, 감사원 등에 소극 행정을 고발했지만 ‘각 부처의 재량 영역이라 조사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 결과 2015년 임시 허가를 받은 기업 4곳 가운데 단 한 곳만 정식 허가를 받았다.
설 대표가 공무원들과 규제를 놓고 싸움을 벌이는 동안 사업의 불확실성이 지속된 그린스케일의 파트너 기업은 함께 사업하는 것을 보류하겠다고 통보했다. 현재 지인의 사무실에서 얹혀살고 있는 설 대표는 “대출금을 갚기 위해 상가 분양 사무소에서 1일부터 ‘알바’를 시작하기로 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