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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다운’ 방식 언제까지…7번째 한미정상회담서 해법 찾을까?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입력 | 2019-04-01 13:46:00



Q.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의 원인 중 하나로 실무 논의(Working-level talk)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회담에서 정상끼리 만나 합의를 한 후 실무를 다루는 탑 다운 프로세스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앞으로 실무 논의에서 해결해야 할 안건은 무엇인지, 이후 북미 관계에 있어서도 탑다운 프로세스가 계속될지 궁금합니다.

-차지현 연세대 경제학과 14학번(아산서원 14기)


A. 미국 내부에서는 북한에 대한 강경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존 볼튼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북미 간 협상에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 알 듯이 과거 수차례 북한과의 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12년 2월 29일 북미 간 합의(Leap-day Agreement)입니다. 합의 후 1달 반 만에 북한은 합의를 위반하고 위성발사를 감행했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북미 간 정상회담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상 수준에서의 접근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탑다운(Top-Down) 방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은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했습니다. 북미 간 요구사항이 지나치게 많았기 때문입니다. 즉, 북한은 영변핵시설 폐기를 양보하는 대가로 유엔안보리 제재결의안 5가지 중 민생부분의 해제를 요구했는데, 이는 미국입장에서 등가성이 맞지 않았고 결국 결렬되었습니다. 최근 로이터통신은 하노이회담 당시 미측이 요구했던 빅딜문서의 내용을 공개했는데, 미국이 북한에게 지나치게 많은 비핵화 요구를 했다는 내용입니다. 즉, 미국은 ‘신고 및 사찰·모든 핵활동 중단·모든 핵인프라 제거-과학·기술자 전직’을 요구했으며, 이는 과거 존 볼튼이 요구했던 리비아식 해법을 의미하였습니다. 또한, 비핵화의 대상으로 핵인프라, 화학·생물전쟁 프로그램, 관련된 이중용도 능력, 탄도미사일, 발사대, 관련시설의 완전해체를 요구했으며, 북한은 이 같은 미국의 요구가 패전국에나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이라며 거부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 같은 결과는 실무협상이 부족할 경우 결론도출이 어렵다는 탑다운 방식의 취약점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김혁철과 비건 특별대표는 겨우 두 번의 만남을 통해 합의문 초안을 작성하였으며, 그 결과 매우 많은 부분이 부족한 합의문 초안을 정상 간의 협의사안으로 넘김으로써 정상회담의 불확실성을 매우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1994년 제네바 합의 시 북미 간 실무협상은 16개월 남짓 걸렸으며, 6자회담 9.19 공동성명 도출을 위한 실무협의 역시 2년가량 지속됐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 같은 실무협상 부족은 결국 서로가 원하는 바를 충분히 조율하는 기회를 상실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향후 북미 양측은 등가성에 맞는 비핵화와 제재완화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 하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 안건은 결국 북미 양국이 합의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와 연관이 있습니다. 하노이회담 이후 볼턴 보좌관은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는 1991년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당시의 비핵화 개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당시 남북한이 합의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配備)·사용을 금지한다.
핵 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해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에 대해 상호사찰한다.’

1992년 2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정원식 총리(왼쪽)와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가 서명한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문을 교환하고 있다. 남북은 1991년 12월 31일에 비핵화공동선언을 채택하고, 이듬해 2월 19일 이를 발효시켰다. 동아일보DB


물론 북한 측은 당시 구성된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에서 한반도비핵화에는 미국의 핵우산도 대상이 되며, 핵을 탑재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핵을 운반할 수 있는 미국의 전략자산 역시 한반도에 전개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주장했습니다. 완전한 비핵화 개념에 대해 향후 북미 양측이 합의하는 문제가 중요 안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주요 쟁점은 북미 간 비핵화 진전을 위한 방법론입니다. 2018년 미국의 태도는 선 비핵화, 후 보상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지속적으로 단계적, 동시행동을 주장해왔습니다. 미국은 이러한 북한의 요구를 상당부분 받아들였으며, 하노이회담 직전에는 ‘초기단계비핵화-초기단계제재완화’ 가능성을 암시했습니다. 그러나 하노이회담 결렬이후 미국의 태도는 다시 강경해졌습니다. 즉, 현재 미국은 포괄적 일괄타결을 원하고 있으며, 북미 간 비핵화 접근법은 더욱더 소원한 상태입니다.

이런 난제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북-미 양측이 대화로 문제를 푸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탑다운 방식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대화로 이 문제를 푸는 것에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방문중인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도 “탑다운 방식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미국 내부에서 나쁜 거래보다는 거래하지 않는 것이 낫다(No deal is better than bad deal)는 논지가 유효한 상황에 트럼프 행정부가 탑다운 방식을 통해 북한과의 빅딜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