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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 불가” → “이미 만든건 가능” 엿장수 규제… 공기 캔 사업가의 좌절

입력 | 2019-04-02 03:00:00

[대통령 위에 공무원, 규제공화국에 내일은 없다]
<2> 공무원의 내맘대로 규제
특허까지 받은 피톤치드 공기 캔… 식약처, 돌연 의약외품으로 지정
국내선 불법이라며 수출은 가능, 업체 “어느 장단에 맞추란 말인지”




“그동안 잘 팔던 제품에 대해 공무원이 불법이라며 국내 판매가 안 된다더니, 수출은 해도 된다고 하고, 또 이미 생산한 제품은 국내에서 팔아도 된다고 하고…. 저는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란 말입니까.”

나폴리농원 길덕환 대표(58)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의 사연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기오염이 심각한 중국에서 캐나다의 공기가 담긴 캔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공기 캔의 상품화 가능성을 확신하고 개발에 뛰어들었다. 경남 통영의 편백나무 숲에서 직접 채취한 피톤치드로 제품을 생산해 온 노하우가 있었던 만큼 피톤치드를 담은 공기 캔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달 28일 경남 통영 나폴리농원에서 길덕환 대표가 식약처의 규제로 팔 수 없게 된 ‘피톤치드 공기 캔’을 들고 개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통영=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2년의 연구개발 끝에 길 대표는 2016년 피톤치드 공기 캔으로 국내 첫 특허를 받았다. 사업은 탄탄대로였다. 2017년에는 그의 공기 캔이 경남테크노파크 우수 항노화 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됐다. 도비 지원으로 안전성을 검증하는 마우스(쥐) 실험도 수차례 했다.

출시된 상품은 ‘대박 모드’였다. 마침 국내에서도 미세먼지가 화두였다. 한 대기업은 사은품으로 사용하겠다며 6만 캔을 사 갔다. 마우스 실험 결과를 확인한 중국 바이어는 연간 100만 캔 규모의 수입 의사를 밝혔다. 약 40억 원 규모의 ‘수출 대박’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황금알을 낳을 줄 알았던 그의 공기 캔 사업은, 그러나 지난해 11월 갑자기 멈춰 섰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체에 직접 흡입하는 공기 제품이 별도의 안전관리 기준 없이 유통되고 있다’며 그가 만든 제품을 의약외품으로 지정하면서다. 기존 ‘일반 공기’ 생산 기준에 맞춰 설치한 생산시설은 한순간에 ‘부적격’ 시설이 되어 버렸다. ‘특허품’이 ‘불법 제품’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중국 바이어는 “캐나다는 비행기로 공기 캔을 수송할 수 있도록 법도 개정해 가며 국가가 나서서 도와주고 있다고 하는데, 공기를 의약외품으로 지정하는 나라가 다 있냐”며 수입 의사를 철회했다. 길 대표는 공기 캔의 수출이 무산된 상황을 구구절절 정부의 인터넷 규제개혁신문고에 올렸다. 하지만 식약처에서는 ‘현재 해당 물품은 국내에서만 의약외품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수출 제품에 대해서는 별도 규제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달았다. 국내 판매는 불가능하지만 수출은 해도 된다는 뜻이다. 이 답변을 길 대표를 통해 접한 중국 바이어는 “한국에서 허가가 안 나 판매가 안 되는 제품을 중국에서는 괜찮다고 판매할 명분이 있겠느냐. 중국 소비자들을 뭐로 보는 거냐”며 불쾌해했다. 식약처의 태도에 길 씨의 공기 캔은 국내외에서 갈 곳을 잃은 처지가 됐다.



“업체 한두개 없어진다고 공무원들이 눈이나 깜빡하겠나”

이와 동시에 식약처는 국내 판매 상품에 대해서는 “일종의 유예기간으로 인정해 의약외품 지정(11월) 전에 이미 제조한 공기 캔은 판매해도 된다”고 했다. 길 대표는 “국민건강 운운하더니 이게 또 말이 되나. 식약처에 회의하러 가면 혈압만 오른다”며 “청와대는 규제개혁하려고 하는데 부처에서는 자기네들 다칠까봐 전전긍긍이고, 업체 한두 개 없어진다고 공무원들이 눈이나 깜빡하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 상전 공무원의 일방통행 간담회

식약처는 의약외품 지정을 앞두고 시행까지 수차례 사업자들을 불러 간담회를 열었다. 길 대표 역시 그때마다 경남 통영에서 식약처가 있는 충북 오송까지 찾아갔다. 하지만 간담회는 ‘논의’가 아니라 ‘우리가 이런 걸 하려고 하니 당신들은 이렇게 준비하면 된다’는 일방적 지시에 그치기 일쑤였다.

1년 넘게 이어진 식약처 간담회에서 “이미 도비 지원사업으로 마우스 실험까지 해 안전성을 입증했다”고 항의했지만 식약처는 “피톤치드의 안전성 증명은 식약처 인증 기관을 통해 승인 받아야 한다”고 했다. 물론 안전성 증명을 위한 추가비용은 업체가 부담해야 한다. 가장 최근 참석한 간담회 역시 ‘앞으로 공기를 생산할 땐 이런 지침, 이런 방식으로 하라’는 통보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뭐라도 마음 놓고 개발해서 사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안 됩니다. 민원을 해도 공무원들은 업체 하소연으로만 봐요. ‘밥 벌어먹고 사업하려면 이렇게 쫓아오라’는 겁니다. 사업하는 사람들만 답답하지 공무원은 여유만만인 겁니다.”

이와 관련해 식약처 대변인실은 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해서 “2016년 가습기 사태 이후 호흡기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 선제적 조치로 공기 캔을 의약외품으로 지정한 것이다. 안전성 증명은 원래 업체가 하는 것이다. 관련 시설 내 설비도 칸막이만 몇 개 더 만들면 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길 대표는 “의약외품이 되면 완제품실, 무슨 실, 다 구분해 칸을 막아야 한다. 공무원들은 조항 하나 넣는 것일 뿐이라고 하겠지만 업체에서는 이것저것 자잘한 것까지 다 비용이다. 현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하소연했다.

○ 공무원이 무심코 던진 돌, 중소기업은 죽는다

길 대표는 이미 공기 캔이 의약외품 지정이 되기 전 ‘호흡용 공기’의 안전관리규정을 담당하는 가스안전공사의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에 맞게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잠수사용, 소방관용 공기통에 들어가는 공기 역시 가스안전공사의 규제를 따른다.

길 대표는 “1시간 넘게 호흡하는 잠수사나 소방관이 쓰는 공기통은 일반 제품인데, 어쩌다 한 번 뿌리는 공기 캔이 어떻게 의약외품일 수 있느냐”며 황당해했다. 편백나무 숲에 자리 잡은 그의 농원에는 피톤치드 공기체험을 하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다. 길 대표는 “여기에 직접 와서 공기를 마시는 건 괜찮고 그 공기를 캔에다 담는 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수출하려면 캔에 담아야지 중국인들에게 여기까지 오라는 거냐”고 반문했다.

길 대표는 연구직을 포함해 직원 5명과 공기 캔 사업을 시작했다. 중국과 대량수출 이야기가 오갈 때는 생산설비를 키우면 직원도 15명쯤은 있어야 하나 행복한 고민도 했다. 하지만 이제 직원은 농장 운영을 돕는 2명뿐이다. 그중 1명은 길 대표의 아내다. ‘수출 대박’을 꿈꿨던 피톤치드 공기 캔이 담긴 수많은 상자들은 이제 애물단지가 돼 통영 창고에 갇혀 있는 신세다.

:: 의약외품 ::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기 위해 쓰는 의약품보다는 인체에 대한 작용이 경미한 물품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따로 정한 분류 기준에 의한 약품을 지칭한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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