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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현장칼럼/구자룡]盧정부때 시작했는데 ‘4대강 적폐’ 몰려… 세종보가 기가 막혀

입력 | 2019-04-03 03:00:00

‘해체대상 1순위’ 꼽힌 세종보 가보니




세종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금강에 건설된 세종보. 지난달 29일 전도식(뒤로 넘어뜨려 열고 닫는 방식) 수문이 모두 열려 곳곳에 강바닥이 드러난 황량한 풍경이다. 왼쪽에는 수력발전소가 있으나 수문 개방 후에는 가동되지 못하고 멈춰 있다. 작은 사진은 2017년 수문 개방 전의 모습. 세종=김재명 기자 base@donga.com·손태청 대표 제공

구자룡 논설위원

19세기 영국은 템스강의 보가 오염물질을 가라앉히는 등 수질 개선 효과가 있는 것을 보고 하수처리장 원리를 개발했다. 이처럼 외국에서 주요 하천의 보는 홍수 조절 등 수량 관리 못지않게 환경 개선에서도 주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이후 한국 강의 보는 진보진영과 환경단체에 의해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낙인찍혀 왔다. 올해 2월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기획위원회’가 2월 금강과 영산강의 5개 ‘4대강 보’ 처리 방안을 발표했을 때 필자가 크게 놀라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4대강 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진한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가 여론의 역풍을 맞자 졸속으로 변형시켜 추진했다는 지적을 받아왔고 필자도 그 추진 과정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봐왔다.

하지만 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응도 ‘묻지 마 청산’처럼 성급하게 처리되고 있는 건 아닐까. 환경부 발표에서 해체 대상 보 가운데서도 경제성이 가장 떨어지고 여론조사에서도 유일하게 해체 찬성이 많았던, 해체 1순위로 찍힌 세종보를 전문가들과 함께 찾았다.

“보(洑)는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지난달 29일 전문가들과 함께 현장에 도착한 필자는 당혹감부터 느꼈다. 세종시를 가로지르는 금강 학나래대교 상류의 세종보는 불과 1km 남짓 떨어진 보 사업소 사무실에서 봐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보 높이가 2.8∼4.0m로 낮은 데다 다른 보와 달리 다리 등 상부 구조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2017년 11월부터 개방한 뒤 강바닥이 드러나 바닥과 물막이 보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비가 오면 보 위를 타고 넘기도 했으나 이날 수위는 42cm, 약 500m 강폭 중 물이 흐르는 곳은 폭이 50m가 채 안 됐다.

세종보는 건설 배경과 목적이 다른 보와는 다르다. 세종보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6년 7월과 11월 수립된 행정도시 기본계획에 따라 시작됐다. 논과 밭뿐인 허허벌판에 신행정수도를 건설하기 위해 인공호수를 파고, 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건천(乾川)에 물을 공급하는 등 ‘친수(親水)’ 시설을 위해 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현 이춘희 세종시장이 초대 행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 청장 시절 기획됐다. 16개 4대강 보 중 유일하게 도심에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필자와 동행한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전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장)는 “세종보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11년 9월 준공은 됐지만 ‘무늬만 4대강 보’”라고 설명했다.

세종보는 사실 2017년 수문을 연 뒤부터 비상이 걸렸다. 세종보 물은 정부세종청사 옆에 조성된 국내 최대 인공호수인 세종호수공원에 물을 공급한다. 이 호수공원의 과거 평균 수심은 1.5m였는데, 보의 물을 뺀 뒤엔 수위가 한 뼘 이상 낮아졌다.

취재에 동행한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오른쪽)와 손태청 세종바로만들기시민연합 대표.

시가지 중심을 흐르는 건천인 제천과 방축천은 상류로 세종보 물을 끌어 ‘신행정수도의 청계천’으로 불렸으나 보 개방 이후 상황이 바뀌어 실개천이 되어 있었다. 손태청 세종바로만들기시민연합 대표는 “‘보가 없어도 물 이용에 어려움이 생길 우려가 크지 않다’고 한 말은 엉터리”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보 개방으로 물 공급이 어려워지자 보 상류에 지난해 3월 돌과 자갈을 철제 망태에 담아 막은 ‘자갈보’가 지어졌다. 기존 보의 물을 빼고 간이 보를 만들어 호수공원이나 제천 등에 보내고 있다. 앞으로 78억 원을 들여 자갈보를 개선하거나 크기를 키우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주민들은 “돈이 남아돈다”고 비판한다. 150억 원 들여 지은 보는 허물고 그보다 부실한 보를 짓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다.

세종보 물이 없으면 보의 상류에 짓고 있는 랜드마크 ‘금강보행교’도 길을 잃는다. 1053억 원이나 들여 원형 다리를 지어 보행자와 자전거가 지나도록 할 계획이었으나 물이 없으면 강 위 관광명소 건설의 취지가 사라진다. 세종보는 해체 대상 5개 4대강 보 중 유일하게 수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가 보 관리 비용을 웃돈다. 발전 전기 판매만으로도 보의 유지 관리를 하고도 남는다는 얘기다.

정부가 세종보 등 4대강 보의 해체나 상시 개방을 발표하면서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이 오염도 증가와 경제성이었다. 하지만 환경부 자체 조사에서도 세종보 하류 금강의 녹조량은 보 수문 개방 전보다 수문 개방 후가 오히려 5배 이상 늘었다. 수량이 줄고 온도가 올라가 녹조류 번식이 늘어난 것이다. 금강 상류의 대전과 청주 도시하수처리장에서 나온 물을 받아 자연 정화하는 기능도 사라졌다.

정부가 유지 관리하는 것보다 부수는 게 낫다는 근거로 제시한 경제성 산출 방법도 납득하기 어렵다. 2017년 10월 수계별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보를 헐어 수질이 나아지거나 생태계가 개선되면 지금 내고 있는 수질부담금을 15% 혹은 30% 더 낼 용의가 있느냐’고 물었다. 금강 유역은 500명에게 물었는데 질문 자체가 ‘세종보를 막아 물이 차 있는 것보다 물이 빠져 모래톱이나 여울이 생기는 것이 생태계에 좋다’는 식으로 이미 결론을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 가지 더 문제는 세종보 경제성 응답자 대부분은 ‘인근 주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응답자 500명은 대전 청주를 비롯해 금강 수계 전체에서 인구 비례로 뽑아 정작 인구가 적은 세종시 시민은 비율이 극히 낮다. 응답자 대부분이 ‘보 유역 주민’이 아니었던 것이다. “보를 연다고 생태계가 개선된다고 단정하고, 더욱이 경제적 가치도 엉뚱한 사람에게 물었다”는 주민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강에 물이 차 레저 활동이 이뤄지는 등 수변시설 이용 효과나 보의 물이 도시 열섬현상을 줄이는 가치 등은 전혀 반영되지도 않았다.

세종시가 조성되고 세종보에 물이 가득 차면서 강변 아파트 주민들은 강에 비친 아파트 사진 등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며 물과 어우러진 도시를 자랑하곤 했지만 이제는 물 빠진 황량한 강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환경부와 세종시 관계자들은 주민설명회에서 반발이 높자 “해체 여부는 의견 수렴과 문제점에 대한 보완 등을 검토한 뒤 6월 출범할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그동안의 진행 과정을 보면 이미 ‘청산 대상’으로 정해놓고 절차를 밟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점수가 꼴찌로 나와 해체 대상 1순위인 세종보 한 곳의 속내만 살펴봐도 이렇게 불합리하고 억울한 게 많은데, 다른 보들은 또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빨리빨리, 속전속결 같은 구시대적 슬로건으로 처리해야 할 사안이 아닌 게 분명한데, 왜 이렇게 성급하게 불가역적인 결정으로 치닫는 걸까.

정치학에서 ‘거울 효과’라고 상대방을 비판하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문재인 정부가 들불처럼 일어나는 주민들의 반대 여론과 이의 제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과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누렇게 메말라 있는 금강 바닥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

세종=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