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위에 공무원, 규제공화국에 내일은 없다] <3> 논의할 만하면 바뀌는 공무원
유전체(게놈) 분석 기업인 메디젠휴먼케어 신동직 대표가 정부를 쫓아다니며 규제 완화를 요청하는 동안 담당인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의 인사이동이 있던 날이다. 불과 3년 만에 6명의 과장을 거쳤다. 가장 짧은 담당 과장은 4개월, 가장 긴 경우는 1년 19일이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 복지부는 2016년 7월 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 검사(DTC·Direct-to-Consumer)를 처음 허용했다. DTC는 비의료기관에서 질병 예방과 관련해 의료기관의 의뢰 없이 유전자 검사를 직접 하는 것. 영국 캐나다 일본은 DTC를 전면 허용하고 있고 미국도 허용 범위가 넓어 한국의 대표적 규제 산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2년 동안 담당 과장은 3명이 바뀌었다. 그때마다 논의 내용은 되돌이표를 그렸다. 약속했던 2018년 6월이 다가오자 복지부는 같은 해 4월 DTC 규제 완화 공청회를 열었다. 반대 의견이 거셌다. 규제 완화에 상대적으로 전향적이었던 담당 과장은 이미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121가지로 확대가 예상되던 유전자 검사 대상 항목은 ‘시범사업’을 조건으로 57개로 축소됐다. 2년 동안 헛심만 쓰다 다시 시범사업으로 돌아온 셈이다.
생명윤리정책과장을 거친 한 복지부 공무원은 “생명윤리정책과가 예전에는 큰 이슈가 없고 조용히 지낼 수 있는 과였는데 규제 개혁의 핵심 부서가 된 이후부터 기피 과가 됐다”고 말했다. 다른 복지부 관계자는 “그 자리에 가면 기를 쓰고 나오려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해외연수를 신청해서 빠져나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담당 부서의 무책임한 무한 논의에 지친 신 대표는 결국 규제가 없는 캐나다에 법인을 세우기로 했다. 신 대표는 “토론토투자청에서 연구소 2년 무상임대와 설립자금 대출을 약속했다”며 “캐나다의 조건은 우리(캐나다) 스타트업과 함께 일해서 시장을 일궈 달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만난 규제 담당 공무원은 8년째 같은 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며 “유독 우리나라만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산업 분야의 규제 이슈일수록 담당자의 의지와 책임감이 중요하지만 공직사회의 ‘잦은 이동’에서 신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폐차 견적 비교 서비스 업체인 조인스오토는 지난달 6일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규제샌드박스 본심의위원회를 통과했다. 앞으로 2년간 현행법의 규제를 받지 않고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 규제를 풀기 어렵기 때문에 우회로를 이용하게 해준 것. 그러나 정작 이 ‘기존 규제’를 풀어야 할 담당인 국토교통부 자동차운영보험과(2015년 8월 신설) 과장은 신설 이후 3년 반 만에 세 번이나 바뀌었다. 담당자가 전문성을 쌓기는커녕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다.
규제 완화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새 수장으로 임명된 이후 1월 대대적인 공유경제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2월 과장급에 대한 대규모 인사가 났고 공유경제 담당 과인 서비스경제과장도 교체됐으며 기존 과장은 불과 1년 만에 자리를 옮기게 됐다.
숙박공유 서비스 업체 대표 A 씨는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논의해 오던 기재부 서비스경제과의 과장과 사무관이 어느 날 갑자기 모두 바뀌어 너무 당황스럽다”고 했다. 그동안 했던 논의는 ‘스톱’ 상태다. 그는 “새 담당자와 다시 얘기를 시작하려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유근형(정치부) 배석준(산업1부) 염희진(산업2부)
김준일(경제부) 임보미(국제부) 한우신(사회부)
최예나(정책사회부) 김기윤 기자(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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