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검증 실패한 민정수석… 공직기강 확립도 제대로 못해 정부를 ‘내로남불 정권’ 각인시켜 有權無罪 無權有罪의 이중 잣대, 정부신뢰 추락시킨 책임 무겁다
사진 동아DB
김순덕 대기자
국민의 재산인 관사(官舍)를 활용해 부동산 ‘갭투자’에 매달렸던 청와대 대변인은 물러나면서도 “대통령이 어디서 살 건지 물으며 걱정하더라”고 각별한 애정을 과시했다. 전세 끼고 집 사는 갭투자를 막겠다고 서민 대출을 거의 막아버린 문재인 정부다. ‘대통령의 입’이 정부에 대한 신뢰를 깎아먹었는데도 대통령비서실장은 문책은커녕 대통령과의 고별 오찬까지 잡아주었다. 로맨스를 넘어 아주 비련의 드라마를 연출한 셈이다.
내로남불이라는 줄임말의 남용은 그 발랄한 어감으로 인해 사안의 심각성을 증발시키는 문제가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본래 문장이 희비극 같은 인간 본성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중잣대와 편 가르기는 본능적일 수 있다.
자칭 진보세력은 법과 규범을 우습게 여기는 기득권 세력의 반칙과 특권을 없애겠다며 촛불시위에 앞장섰다. 공사 구별 못 한 채 국정을 사사화(私事化)했던 대통령이 탄핵되고 뒤를 이은 사람이 문 대통령이다. ‘리틀 문재인’ 조국 민정수석은 검경 개혁의 칼을 움켜쥔 채 사정기관을 장악한 상태다.
조국이 물러나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정수석의 핵심 임무가 공직 기강 확립과 인사 검증이다. 작년 지방선거 압승 뒤인 6월 18일 ‘문재인 정부 2기 국정운영 위험요소 및 대응방안’ 보고에서 정부 여당의 오만한 심리가 작동할 가능성을 위험요소로 지적한 사람이 조국이었다. 민정수석 중심으로 청와대와 정부 감찰에 악역을 맡으라는 대통령 지시도 그때 나왔다.
그러고도 김태우 전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폭로, 특별감찰반 전원 교체, 버닝썬과 청와대 근무 ‘경찰총장’의 연루 사실이 터져 나왔으면 조국은 진작 책임을 졌어야 마땅했다. 인사 청문회마다 비판이 쏟아지는데도 청와대가 민정수석을 극구 옹호하는 것이야말로 공직 기강이 문란해졌다는 반증이다. 민심을 대통령에게 전하지도 못하고, 정부 여당의 오만한 심리를 제어하지도 못해 문재인 정부를 ‘내로남불 정권’으로 각인시킨 조국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
내로남불에 내장된 발칙한 속뜻이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無權有罪)다. 1988년 탈주범 지강헌이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를 절규할 때만 해도 보통사람들은 유무죄를 좌우하는 게 돈이라고 믿었다.
그들의 이중잣대는 집권 중 유권무죄를 향유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중잣대가 사회에 만연하면 신뢰자본이 위축된다고 지난해 한국리서치는 분석했다. 사회지도층에 대해 강한 부정적 이미지를 가질수록 신뢰, 즉 사회자본은 더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데 가장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정부에 대한 신뢰와 사회자본을 이 정부가 무너뜨리고 있기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스러운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재·보선 패배로 사퇴 위기를 맞았을 때 조국이 곁을 지켜줬다는 고마움에 문책을 못 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결코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지금까지의 족적으로 볼 때 내년 총선이나 다음 대선에 꽃가마를 태워 내보낼 작정인 듯하다.
개인적 의리나 은혜는 개인적으로 갚으면 될 일이다. 대통령이 공사 구별 못 하고 국정을 사사화했다는 비판을 안 듣게 하기 위해서라도 조국은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