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화학공업을 중시해 온 북한은 여러 종의 화학무기를 개발해 관련 기술을 시리아 등에 수출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시리아의 화학무기 보관 창고이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북한 공작원들은 흐엉과 아이샤의 손에 각기 다른 화학물질을 묻혀 김정남의 얼굴에 바르게 했다. 따로 있으면 독성이 없는 이 물질들은 섞이는 순간 맹독성 독극물 VX로 변한다. 그래서 먼저 화학물질을 바른 아이샤는 멀쩡했지만, 두 번째 화학물질을 바른 흐엉은 독극물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흐엉이 곧바로 화장실에서 손을 씻었지만 구토 증세를 보인 이유다. 재빠르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흐엉도 현장에서 죽었을 것이다.
북한은 VX처럼 두세 가지 물질이 섞이기 전까지는 독성을 띠지 않는 이원화, 삼원화 형태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 독극물들은 북한에서 정치범 등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통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직도 그 실체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화학무기의 특수한 제조 과정이 걸림돌이다. 화학무기는 각각 무해한 화학물질을 만든 뒤 특수 제작한 폭탄이나 포탄에 넣어 보관한다. 이것이 폭발해 물질이 섞이는 순간 살상무기가 된다. 따라서 화학무기는 화학 공식을 만드는 개발자만 진실을 파악할 뿐 생산자들은 자신이 화학무기용 물질을 만든다는 사실조차 알기 어렵다. 반면 핵무기는 개발자나 현장 생산자 등이 모두 핵무기를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 화학무기 생산의 중추는 화학산업 연구의 핵심인 과학원 산하 함흥분원으로 추정된다. 함흥분원에는 화학공학연구소, 화학실험기구연구소, 화학재료연구소, 유기화학연구소, 무기화학연구소, 분석화학연구소 등 10개의 직속 연구소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함흥분원 옆에는 국방과학원 소속인 화학재료연구소가 있으며, 자강도 강계에도 화학 관련 연구시설이 있다. 이 중 어디에서 화학무기가 설계되고 만들어지는지를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
화학무기 연구소와 생산 라인이 같이 있다는 점도 북한 화학무기의 실체를 알기 어렵게 만든다. 특정 물질이 개발되면 필요한 양만 생산하고 해당 생산라인은 멈춰진다. 만들어진 물질은 화학무기를 운용하는 부대에서 직접 수령해 무기화한다. 미사일 운영 특수부대인 ‘전략군’처럼 화학무기 운영 전담 부대도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생물무기 개발의 목표는 한국군의 전투력 상실에 있다고 한다. 특히 장염을 일으키는 생물무기가 이미 여러 종이 생산됐다는 증언도 있다. 탄저균처럼 치명적 균도 연구를 끝낸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생화학무기는 김정남 암살을 계기로 반짝 조명됐지만 다시 수면 아래로 묻히게 됐다. 어쩌면 김정은 정권이 존재하는 한 영영 베일에 감춰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