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주최-본보 후원 3·1운동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형평사를 기념해 건립한 경남 진주시 형평운동기념탑. 형평사는 백정들이 신분 해방과 인간 존엄성 실현을 도모한 단체다. 일본 부라쿠민 해방운동을 벌인 ‘수평사’와도 교류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도형)이 주최하고 동아일보가 후원하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가 9일 오전 9시 20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주제는 ‘민주·공화주의의 세계사적 의미와 동아시아 독립운동의 전개-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배경, 전개과정 및 영향의 재조명’이다.
미즈노 나오키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는 학술회의에서 발표 예정인 ‘평등과 연대-3·1독립운동과 조일(朝日) 피차별민의 연대운동’에서 “임시헌장의 이 같은 평등 원칙은 아시아 최초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즈노 교수는 3·1운동 전후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원칙이 조선에서 널리 수용됐다고 봤다. 백정은 19세기 말부터 민족 또는 국민의식에 눈뜨기 시작했다. 만민공동회에서 연설해 박수를 받았고, 국채보상운동에도 참여하는 한편 민족의 일원으로 차별 철폐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마침내 1923년 4월 경남 진주에서 형평사가 조직한 걸 시작으로 형평운동이 조선 각지로 퍼져나갔다. 3·1운동이 낳은 또 하나의 유산인 셈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1919년 9월 17일 중국 상하이 임정 하비로 청사 앞에서 촬영한 사진. 동아일보DB
“형평사 동인(同人) 제군, 우리들 수평사 동인과 제군 사이에 있는 것은 단 하나의 해협뿐입니다. 우리들은 고작 122마일에 불과한 이 해협이 우리의 굳건하고도 따뜻한 악수를 막는 데에 얼마나 무력한가를 몰지각한 인간 모독자의 눈앞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른바 정신적 노예제의 영역을 돌파하려는 인류의 기수(旗手)로 선택된 민중이라는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진군합시다.”
일본 수평사가 1924년 4월 조선 형평사대회에 보낸 축사다. 형평사도 즉시 감사의 뜻을 수평사에 전했다. 두 단체의 교류를 매개한 건 일본 오사카의 조선인 아나키스트 그룹과 도쿄의 ‘북성회’ 등 일본에서 사회운동을 펼치던 조선인들이었다. 형평사와 수평사의 제휴는 구성원이 서로 방문하고 대회에서 축사를 하는 등 1920년대 후반까지 더욱 활발해졌다.
9일 학술대회 1부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국의 민족독립운동과 민주·공화주의를 조명한다. 퍼걸 맥게리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퀸스대 역사·인류·철학·정치학대학 교수가 ‘혁명의 시대와 아일랜드의 독립 투쟁’을, 허우중쥔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연구원이 ‘제1차 세계대전과 중국 민족주의 운동의 전환’을, 신효승 동북아재단 연구위원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세 인식의 변화와 한국의 독립운동의 전개’를 발표한다.
2부에서는 ‘3·1독립선언,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외활동’을 주제로 ‘독립선언서에 나타난 세계주의와 평화사상’(장인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3·1혁명론과 민주공화제―임시정부 법통론과 관련하여’(윤대원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객원연구원), ‘3·1운동 이후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의 식민지 분할통치’(서종진 동북아재단 연구위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중국 활동과 상하이 프랑스 조계’(장세윤 동북아재단 연구위원) 등이 발표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