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중근, 안치용 KBSN 해설위원, 이진영 라쿠텐 골든이글스 연수 코치(왼쪽부터)는 1997년 청소년국가대표팀에서 함께 외야를 지켰다. 22년 만에 야구대표팀 전력분석팀에서 다시 모인 이들이 야구공을 함께 잡고 활짝 웃고 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1997년 여름. 해맑은 표정의 소년들이 김포국제공항에 모였다. 보기 좋게 그을린 얼굴, 건장한 체격이 눈에 띄었지만 한껏 들뜬 모습은 참 순박했다.
캐나다로 떠나는 비행기에는 안치용(신일고 3학년), 봉중근(신일고 2학년), 이진영(군산상고 2학년)이 타고 있었다. 태평양을 횡단하는 먼 길이었지만 설레는 마음은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22년의 시간이 흘렀다. 1997년 캐나다 멍크턴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에서 대한민국대표로 활약했던 이들은 모두 현역 유니폼을 벗었고, 40대가 됐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러나 함께 마주앉아 추억을 떠올리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듯 그때 초롱초롱 눈이 빛나는 소년들로 금세 바뀌었다.
안 위원은 무심한 표정, 그러나 익숙한 동작으로 봉 위원과 이 코치 앞 접시가 비면 잘 구워진 고기를 올려놓으면서 “선수는 아니지만 다시 모여 대표팀을 위해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 의미 있고 기쁘다. 진영이랑 청소년대표팀에서 룸메이트였다. 별명이 ‘군산 강타’였다”며 웃었다.
이 코치도 활짝 미소 지으며 “하하. 그때 HOT가 한창 인기였다. 눈매가 비슷해서 그런 별명이 있었다. 나중에는 골프스타 박세리 선수랑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모두 엄청난 영광이다”고 말했다.
‘봉 위원의 별명은 무엇이었냐?’고 묻자 동시에 “야천(야구천재)”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코치는 “2학년으로 청소년대표팀에 뽑혔다. 정말 영광이었다. 봉 위원도 같은 2학년이었는데 투수와 타자 모두 굉장했다. 진정한 야구천재다”고 말했다.
봉중근, 안치용 KBSN 해설위원, 이진영 라쿠텐 골든이글스 연수 코치(왼쪽부터).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1997년 청소년야구대표팀에선 전국구 거포로 꼽혔던 안치용, 최희섭(광주일고)을 중심으로 나란히 2학년이었던 봉중근, 이진영이 맹활약했다. 봉 위원은 4연속경기홈런을 기록하며 대회 최우수선수와 ‘베스트10’으로 선정됐다. 봉 위원은 “잊지 못할 순간이다. 그때 치용이 형, 희섭이 형은 야구만화에 나오는 4번타자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안 위원은 “대회를 앞두고 군산에서 훈련을 했었다. 돌이켜보면 캐나다까지 가는 비행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륙하자마자 땅콩을 줘서 참 고마웠다”며 미소 지었다.
이 코치는 “나는 반대로 군산에서 ‘서울사람’들을 만나 신기했다. 합숙훈련 할 때는 스스로 사투리가 어색했는데 대회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자 친구들이 ‘그새 서울말 배웠냐’며 눈을 흘겼다”고 털어놓고는 “함께 방을 쓴 치용이 형이 참 잘해줬다. 중근이도 그랬지만 형도 야구천재였다. 서울사람이라 그런지 참 깔끔했다. 샤워를 얼마나 꼼꼼히 오래하는지 덕분에 씻을 시간이 항상 부족했다”며 미소로 추억했다. 이어 “치용이 형은 비행기 땅콩이 신기했어? 난 이미 중학교 때 대표팀에 뽑혀 비행기에서 땅콩 먹어봤었다”고 말해 웃음을 줬다.
고교시절 태극마크가 선명한 유니폼은 지금까지도 이들에게 큰 자부심이었다. 그만큼 국가대표 전력분석팀의 역할에 대한 열정도 컸다.
안 위원이 “진영이는 상대 투수 자신도 모르는 여러 습관을 잡아내는 매우 특별한 능력이 있다. 든든하다”고 말하자, 봉 위원은 “메이저리그에서 단 한 번도 지적 받은 적이 없는 나도 모르는 투구 습관을 LG에서 진영이가 금세 잡아내서 정말 놀랐다”고 말했다.
이 코치는 “투구 습관을 잡아낸다고 해서 항상 안타를 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 타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제 직접 그라운드에서 뛸 수는 없지만 좋아하는 형, 친구와 함께 선수들의 눈이 될 수 있어서 기쁘고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22년 만에 청소년대표선수에서 국가대표팀 지원 멤버로 다시 만난 이들의 정다운 대화는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절반은 선수 때 추억이었고, 절반은 국가대표선수들에게 어떻게 더 깊이 있는 정보를 전달할 것이냐는 고민이었다. 믿음직한 4번타자였고, ‘국민 우익수’였고, ‘봉의사’였던 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의기투합하는 모습이 듬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