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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구하고 마을 지키려 불 끄려다가…목숨 잃은 내 동생”

입력 | 2019-04-06 00:11:00

속초 영랑동 거주 50대 숨져



강원 고성군 토성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5일 새벽까지 강풍을 타고 여러갈래로 나뉘어 번져 마을과 건물이 불타는 큰 피해를 입혔다. 시내의 건물 주변이 온통 불에 휩싸여 있다.(강원일보 제공)


“하느님도 부처님도 안믿어도 내 동생은 믿을 정도로 성품이 좋았어요. 형같았던 내동생, 어릴 때부터 돈 벌어서 가족 다 부양하고 어려운 형, 누나 도우면서 살았는데 끝까지 불을 끄다 이런 변을…”

전날 오후 7시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인근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불은 반나절만에 속초와 강릉 시가지 일부까지 집어삼켰다. 이 과정에서 사망자도 발생했다. 속초 영랑동에 살며 고성 토성면을 오가던 김모씨(59)다.

2남2녀 중 셋째로 형제간 우애가 좋았던 그는 8살 위 누나와 3살 위 형과 함께 고성에서 목공예 공장을 운영하면서 장의사로도 일했다. 김씨는 어릴 적 씨름선수로 활동한 적 있을만한 덩치는 컸고, 감기 한번 앓은 적 없을 정도로 건강했다.

그는 노쇠해 거동이 불편해진 60대 손 위 누이 집을 매주 수차례 안부 차 드나들었다. 화마가 마을 인근을 덮친 4일 오후도 그는 누나를 구하러 집을 나섰다.

형 김씨는 “동생이 집이 주저앉고 유리가 녹아내리는 화마 속에서 어떻게든 불을 끄려다가 센 바람에 연기를 맡고 쓰러지면서 유명을 달리했다”고 말했다.

누나 구조도 구조지만 마을로 내려오는 불길을 막으려다 변을 당했다는 게 형 김씨의 설명이다. 그는 “끝까지 불을 끄던 모습을 보는 사람이 네 명이나 있다”면서 “의인으로 보상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씨의 뒤통수에서도 부딪힌 흔적이 발견된 만큼 정확한 사인이 불분명해 혈액검사·부검을 요청한 상태다.

김씨의 사망에 지인들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유년 시절부터 사춘기, 청춘과 노년을 함께 한 50년지기 친구 황모씨(58)는 “욕먹을 짓 한번 하지 않고 성실히 살았던 친구가 먼저 떠나서 너무 안타깝다”면서 “그렇지만 나라도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례식장이 마련된 속초시 교동의 빈소를 주말동안 지키겠다고 말했다.

(속초·강릉·동해=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