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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껐지만…꺼지지 않는 이재민들 한숨

입력 | 2019-04-06 12:40:00

고성 천진초 대피소 138명 이재민 '천막살이'
"집이 다 타버려 갈데가 없다…앞으로가 문제"
"아무리 많이 보상받아도 내 살림살이 비하면"




고성·속초 등 강원 지역을 할퀸 대형 산불이 대부분 진화됐지만 피해 주민들의 한숨은 여전하다. 특히 돌아갈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산불피해 이재민들은 대피소에서 뚜렷한 대책 없이 머물러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6일 오전 찾은 강원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대피소에는 138명의 이재민들이 강당 안 천막으로 꾸려진 임시거주시설에 머물고 있었다.

담요에만 의존해야했던 산불 발생 첫날과 비교하면 대피소의 사정은 많이 나아진 모습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구호 물자가 속속 도착해 식사 외에도 휴대전화 충전기 등 지원 시설이 어느정도 갖춰졌다.

다만 대피소에서 만난 이들의 마음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역대급 산불로 돌아갈 집을 잃었기 때문이다.

1인용 텐트에 거주 중인 김모(55)씨는 ‘언제쯤 돌아갈 것 같느냐’는 질문에 대뜸 휴대전화(아래 사진)를 내밀었다. 액정 화면에는 오랜 시간 삶의 터전이었던 집이 새까맣게 변해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집이 이렇게 다 타버렸는데 어떻게 가. 갈 데가 없어요.”

마치 용암과도 같은 불길이 덮쳤던 순간을 기억하면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40여년을 변치 않고 서있던 집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한 걸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김씨는 “앞으로가 문제지. 여기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 집에 가긴 가야하는데, 가면 잘 데도 없고 밥 해먹을 곳도 없어요. 닭들도 다 타죽고 남아있는 게 없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70대 서모씨도 정든 보금자리를 잃고 대피소에 앉아 있었다.

차마 피해를 줄일 수 있을까 세탁기에 물을 가득 채워뒀지만 무쇠까지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것저것 준비하던 서씨는 제 시간에 대피하지 못해 주택 인근에서 불길을 피하며 밤을 지새워야했다.

전날 대피소로 이동한 덕에 당장 불편함은 크지 않다고 했지만, 집에 두고 온 살림살이들이 눈에 밟히는 듯했다. 얼마전 600만원을 주고 고친 오래된 창틀, 둘째 딸에게 물려주려고 한 ‘오리지널 일제’ 재봉틀, 고이 나둔 패물들, 그리고 30년간 살았던 집. 6·25 때 미군 배를 타고 북한을 떠난 서씨가 사별한 남편과 1990년 직접 지어 들어간 집이라고 한다.

서 씨는 “살려면 새로 집을 지어야하는데 (돈이) 걱정이죠. 정부에서 줘 봐야 얼마나 주겠어요.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내가 채워넣었던 살림살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거에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사가 다 끝나고 또 정부에서 뭐가 결정돼고 해야 어떻게 할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곳 생활도 한 5일 정도는 괜찮겠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할까 하는 걱정이 있어요”라며 “그나마 날씨가 더워지고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한편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 기준 고성 339명, 속초 135명, 강릉 44명, 동해 15명이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고성=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