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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국경 열린다” 가짜뉴스가 다시 불지핀 난민사태

입력 | 2019-04-08 03:00:00

난민수용소 빠져나온 600여명, 북부 국경도시 몰려가 경찰과 충돌
EU 난민위기 종식 선언 무색… 집시-난민 혐오 가짜뉴스 기승
교황 “객관적 보도 해달라” 당부




아수라장 된 그리스 국경마을 6일 그리스 북부 국경마을 디아바타에서 경찰이 시위하는 난민(오른쪽)을 발로 걷어차고 있다. 이날 난민 수백 명은 다른 유럽연합(EU) 국가로 넘어가겠다며 북마케도니아 국경을 향해 행진하다 경찰과 충돌했다. 북마케도니아, 알바니아 등이 국경 통제를 강화해 그리스 체류 난민 7만 명은 3년째 다른 유럽 국가로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 디아바타=AP 뉴시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구조적인 문제가 남았지만 더 이상 난민 위기는 없다”며 2015년부터 시작된 난민 위기의 종식을 지난달 선언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해 지중해를 건넌 아프리카 등의 난민은 11만6647명으로 2015년과 비교할 때 89% 줄었다. 그런 가운데 가짜뉴스가 갑자기 난민 문제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4일부터 내리 3일간 그리스 북부 국경도시 테살로니키 인근에서 경찰과 난민의 충돌이 이어졌다. 난민수용소에서 빠져나온 600여 명이 북마케도니아, 알바니아 등 다른 국가로 넘어가려고 했고 이를 막으려는 경찰과 충돌했다. 어린이를 안은 난민들은 경찰에 돌을 던졌고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했다.

난민의 이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진 가짜뉴스가 시발점이었다. ‘4월 초 북마케도니아와 알바니아로 넘어갈 수 있도록 그리스 북서부 국경이 열릴 것’이라는 풍문이 돌면서 테살로니키 일대에 난민이 몰렸다. 이라크 출신 카잔 압둘라(24)는 6일 “1년 동안 그리스에서 머물렀는데 희망이 없다. 다른 유럽 국가로 가야 한다”며 “그리스와 북마케도니아 국경이 열릴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다.

아테네 라리사역에서는 북서부로 가려는 난민들이 이동을 막는 경찰에 맞서 시위를 벌여 열차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디미트리스 비사스 그리스 이민장관은 “국경이 열린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난민들은 즉각 원래 있던 수용시설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집시가 타고 있는 하얀 승합차가 젊은 여성과 아이들을 납치한다’는 가짜뉴스가 SNS에 퍼지면서 프랑스 파리 인근 집시 거주 지역이 공격당했다. 2일 이탈리아 로마시청이 집시 약 70명을 도시 외곽 공공수용시설에 임시로 이주시키려고 하자 극우단체 등이 집시들의 진입을 막으려고 차량과 쓰레기통에 불을 지르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집시들은 굶어죽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

5월 유럽의회 선거가 다가오면서 정치권에서도 난민 혐오를 부추기는 가짜뉴스가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우파 정치인 중 한 명인 니콜라 뒤퐁에냥 프랑스바로세우기 대표는 4일 언론 인터뷰에서 “5년 이내에 유럽에 1800만 명의 이민자가 들어올 것”이라며 “우리 시민들은 그들이 가져가려는 우리의 부를 계속 갖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전 세계의 가난한 이들이 유럽에 오는 것을 환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언론과 진보 정당 등은 뒤퐁에냥이 밝힌 이민자 전망 수치는 현재 유럽에 머무는 난민을 모두 포함한 통계라고 반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일 독일 기자들에게 “현재 세계는 사회 통합이 부족하고 인간 존엄과 양심의 자유가 침범을 당하고 있다”며 “가짜뉴스가 아닌 사실과 객관적인 보도를 해 달라”고 당부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