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18번 홀(파5)이었지만 전혀 다른 홀처럼 보였다. 제주의 변화무쌍한 바람 탓이다.
#1 조아연(20)이 이 홀에서 티샷을 할 때는 슬라이스 뒷바람이 불었다, 드라이버 티샷 후 남은 거리는 206m. 17도 유틸리티로 친 공은 그린 뒤 프린지에 떨어졌다. 퍼터로 8m 이글을 노렸지만 아쉽게 컵에 못 미쳤다. 조아연은 OK 버디로 홀아웃했다. 이 홀에 대해 조아연은 “(세컨드샷 지점에서)뒷바람이 불어 아이언 칠까 유틸리티를 칠까 고민하다가 긴 클럽으로 편하게 치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쳤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2 김민선(24)은 조아연보다 20분 정도 늦게 18번 홀에 도착했다. 이번에 초속 5m 내외의 다소 강한 앞바람이 불었다. 드라이버를 친 뒤 남은 거리는 222m. 조아연 보다는 두 클럽 가까이 덜 나갔다. 우드로 친 공은 그린에 못 미쳤다. 그래도 어프러치샷을 컵 1m 에 붙였으나 이번에는 연장을 노린 버디 퍼트가 컵을 외면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2019시즌 시즌 첫 국내 개막전인 롯데렌터카여자오픈 챔피언의 향방은 ‘하늘’도 큰 역할을 했다.
신인으로 KLPGA투어 국내 개막전 우승한 조아연. KLPGA 제공
스포츠 경기에서 ‘만약에 그랬다면’이란 가정만큼 부질없는 얘기도 없지만 김민선의 마지막 홀 티샷 때 적어도 앞바람이 불지 않아 투온에 성공했더라면 다른 결과도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었다. 특히 이날 김민선은 바람이 강해진 경기 막판 아쉬운 순간이 많았다. 선두였던 15번 홀(파5)에서 공을 물에 빠뜨리며 보기를 했고, 17번 홀(파3)에선 장거리 버디 퍼팅이 컵을 맞고 튀어 나왔다. 바뀐 골프 규칙에 따라 핀을 꽂고 퍼팅을 했었더라면 깃대에 맞고 들어갈 뻔했다. 후반 2개의 파5홀에서 2개의 보기를 한 김민선은 공동 3위로 대회를 마쳤다.
이번 시즌 시드전을 수석 합격한 조아연은 3타차 공동 7위로 출발해 버디 6개와 보기 1개로 5언더파를 몰아쳐 짜릿한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신인상 포인트뿐 아니라 대상 포인트도 1위에 나서 벌써부터 지난해 두 가지 상을 휩쓴 최혜진의 향기가 난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앞으로 마지막 날 챔피언 조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중압감 극복, 연간 30개 가까운 대회를 치르는 강행군에 따른 체력 관리 등은 당면 과제로 꼽힌다.
늘 새로운 얼굴이 등장해 화수분이라는 얘기를 듣은 KLPGA투어는 다시 한번 조아연이라는 특급 카드의 등장을 반기게 됐다. 서막부터 언니들을 모두 제치고 주인공이 된 2000년생 조아연은 자신이 사용하는 분홍색 공처럼 핑크빛 앞날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