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성 인격장애
연극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기 때문에 타인의 감정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동아일보DB
“선생님이 그에게 말 좀 해주세요. 그가 저를 돌봐줘야 하는 거잖아요!”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여자는 의사를 붙들고 목 놓아 서럽게 울었다.
“그 사람이 이제 내 말을 듣지도 않아요. 나를 이렇게 대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남자친구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여자는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여자는 전에도 종종 이렇게 남자친구 문제를 토로했다.
여자는 누가 봐도 매력적이다. 몸에 밴 친절한 말투와 청순가련한, 누군가 보호해줘야만 할 것 같은 외모다. 하지만 보기와 달리 여자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가장 친한 동성친구와 관계가 틀어진 것도 여자가 친구의 남자친구를 소개받고 나서다. ‘저 남자는 왜 내가 아닌 친구를 만나는 걸까.’ 여자는 이해가 안 됐다. 자신에게 무관심한 친구의 남자친구를 보면서 여자는 친구에게 심한 질투심을 느꼈다.
여자는 결국 해선 안 되는 말을 하고 말았다. “내 친구가 뚱뚱해서 같이 다니기 좀 창피하지 않나요.” 친구는 보기에 따라서 통통하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뚱뚱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자도 알고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온 것이다. 마음을 다친 친구는 결국 여자와 절교했다.
여자는 언제 어디서든 타인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얼마 전엔 남자들이 다른 여자에게만 관심을 보이자 속상한 마음에 혼자 술을 마시고 취해 우는 바람에 모임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적도 있다.
남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만 있다면 여자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남자 앞에서 다친 척, 항상 어딘가 아파 보이려 하다 거짓말이 들통나기도 했다.
여자는 자신의 이런 성격 탓에 대인관계가 원만치 않다는 것도 잘 안다. 만나는 남자가 있는데도, 친구의 남자를 넘보다 동성관계는 물론 이성관계마저 끝나 버린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런 자신이 싫지만 자신도 모르게 반복되는 행동과 감정에 여자는 괴롭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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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TIP
연극성 인격장애(histrionic personality disorder)는 감정 표현이 과장되고 주변 시선을 받으려는 일관된 성격상의 특징을 갖는다. 타인에게 필요 이상으로 의존적이고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는다. 자신이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타인의 마음을 얻는 데 자신이 없다고 느끼면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부적절할 정도로 유혹적이거나 자극적이다. 타인과 관계를 실제보다 더 친밀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정신의학 연구 결과에 의하면 사람들의 2∼3% 정도가 연극성 성격장애를 갖고 있다고 본다. 성격장애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성격적인 특징만 판단해선 안 되고 그 성격이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한 전문가의 전반적인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박희형 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