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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이슈 앞에 한없이 초라한 북한군부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입력 | 2019-04-09 14:00:00



Q.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보를 요약해보자면 ‘군부 달래기’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5년여의 북핵 협상의 과거를 돌아보자면 북한의 핵 협상 전략은 강경파(군부)와 협상파(외교파) 중 누가 주도권을 지는가에 따라 판이해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노이회담 결렬로 협상파가 수세에 몰리고 군부 측 입김이 상대적으로 강해졌을 현 상황에서, 또 김일성 출생일(4월 15일)을 앞둔 시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강경 노선으로 선회할 가능성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또한 김정은 정권의 ‘비핵화 의지’와 ‘군부 달래기’가 장기적으로 양립 가능한 정책인지에 대해서도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박기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15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A. 일반적인 경우 독재국가에서 군부는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통치의 직접적인 주체가 됩니다. 그러나 공산주의권의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에서 군부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우며, 그 이유는 공산주의 정치체제의 특성 때문입니다.

중국의 인민해방군을 지휘하는 곳은 국가가 아닌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입니다. 중국군은 당의 군대인 셈이지요. 북한의 최고 권력기관인 노동당에도 당중앙군사위원회가 있으며, 군대를 지휘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위원장이고요.

김정일 위원장은 특이하게도 국방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장에 취임했으며, 군부를 앞세우는 선군정치를 실시했습니다. 이는 사회주의체제 붕괴의 여파로 초래된 북한 정권 최대의 위기인 1990년대 고난의 행군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국가적인 위기에 직면한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판 계엄통치라고 할 수 있는 선군정치를 시도했으며, 이로 인해 군부가 약진하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지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제5차 중대장·중대정치지도원대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과 동시에 비대해진 군부의 힘빼기에 착수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반년 만에 선군정치의 최대 실력자인 이영호 전 총참모장을 전격적으로 숙청했으며, 인민군 장성들의 강등과 복권을 반복하는 소위 견장정치를 실시했습니다.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장도 수시로 교체했으며,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설치했습니다. 김정은식 사회주의 국가 정상화라고 볼 수 있지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협상을 주도했던 김영철-김혁철-김성혜 등 북한의 통일전선부 라인에 대한 검열설이 돌고 있지요. 또한 3월 15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군대와 군수공업부문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면 안 된다며 김정은 위원장에게 수천 통의 편지를 올리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는 군부의 불만 표출이라기보다는 충성경쟁 또는 대미 메시지 전달 전략의 일환일 가능성이 큽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정은 체제에서 북한군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 세력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권력 2인자를 허락하지 않으며, 특정 집단이 정치세력화하는 것은 곧 숙청을 의미합니다. 향후 북한 정치체제 역시 변화의 가능성은 있지만 적어도 현재의 국면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군부달래기에 나설 이유는 없는 셈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보다 큰 딜레마는 진퇴양난의 현 상황입니다. 의욕을 보였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성과가 없었으며 대북제재로 인한 북한 내의 피로감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현 상황에서 협상국면을 파기하거나 핵실험 또는 미사일 발사 등 도발적 행동을 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 경우 대북제재의 심화는 물론 미국의 군사적 압박도 재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북관계도 동력을 상실할 것이고요. 미중 무역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중국이 노골적으로 북한편을 들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개업을 앞둔 평양의 대성백화점을 현지 지도했다고 8일 보도했다. 뉴시스


현 상황에서 북한이 다시 과거와 같은 도발적 행태로 돌아갈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하노이 이후 칩거 중이던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경제관련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전망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협상을 통해 최대한의 경제보상과 체제보장을 확보하는 것을 1차적인 목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종적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여부는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이르며, 향후 우리와 미국의 노력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북한의 핵을 용인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견지하는 동시에 핵보유가 김정은 정권과 북한체제의 미래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점을 확고하게 설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