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정부 고위인사가 잇따라 경질되거나 사퇴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행(acting) 체제’로 연명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장관이나 관련 조직을 상대로 ‘숙청’ 수준의 대대적 인사교체가 이뤄져 정책 추진력 상실 및 조직 불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자신의 경호 책임자 랜돌프 앨리스 비밀경호국(SS) 국장을 해임했다. 비밀경호국은 국토안보부 소속 기관이다. 하루 전엔 앨리스의 상관인 커스텐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도 경질됐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는 국토안보부를 대대적으로 손보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케빈 메컬리넌 세관국경보호청장이 국토안보부 장관 대행으로 임명되면서 현재 연방정부 15개 부(部·Department) 중 내무, 국방, 국토안보 3개 부서가 장관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도 대행이며 그의 이전 직책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도 공석이다. 미 연방항공청(FAA), 식품의약국(FDA), 중소기업청(SBA) 등 차관급이 수장인 주요 기관도 청장(국장) 대행 체재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기관의 정식 수장을 임명하지 않고 대행 체제를 고수하는 이유 역시 자신에게 좀더 고분고분할 수밖에 없는 소위 ‘임시직’을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공무(公務)를 우습게 아는 대통령에 의해 대행 체제가 남용되고 있다. 해당 부처의 정책 결정력 및 리더십을 마비시키고, 조직 수장의 권위를 대내외적으로 약화시킬 뿐 아니라 단기적 문제 해결에만 급급하게 만든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대통령에게 ‘아니다(no)’라고 말할 사람이 누가 남았는가”라며 동조했다.
행정부처 수장의 대행 체제는 인사 검증 및 승인권을 가진 의회의 힘을 약화시켜 헌법에 명시된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미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행정부 고위직 717개 중 현재까지 최종 승인이 난 자리는 불과 436개다. 나머지는 인사 청문회가 열리지 않았거나 아예 지명조차 되지 않았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