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세금이 안 걷힌다]
지난해 결산 실적을 토대로 내는 법인세가 잘 걷히지 않고 있는 것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글로벌 경기가 악화되면서 기업들의 실적이 급속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복지 확대와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을 대거 투입하려 하지만 정작 기업들은 세금 낼 여력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 기업들 ‘세금 납부 유예’ 요청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중 무역분쟁과 글로벌 경기 둔화의 여파로 기업 실적이 부진에 빠졌다. 올 3월 기업들이 완납한 2018년분 법인세는 당초 계획에 못 미친 것으로 세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기업들은 전체 연간 세금에서 작년 8월 중간 예납한 세금을 뺀 금액을 3월에 낸다. 조선 해운 석유화학 등이 불황을 겪으며 당초 정부가 기대한 만큼 세수가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월별 세수 목표치를 내놓지는 않는다. 다만 기획재정부는 올해 전체 법인세가 작년보다 25.7%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증가율 전망대로라면 올 3월 법인세수는 20조 원을 훌쩍 넘어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업의 현금 유동성이 예상보다 적은 ‘돈맥 경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기업들은 3월에 내야 할 법인세를 유예해 달라고 세무서에 요청하기도 한다. 법인이 경영 위기를 겪을 때 최장 9개월까지 세금 납부를 미뤄 주는 징세 유예 제도를 적용해 달라는 것이다. 아울러 비용으로 반영할 수 있는 항목을 최대한으로 늘려 과세표준(과표·세금부과 기준금액)을 줄이려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세무당국의 한 관계자는 “현재 법인들이 신청한 징수 유예에 대해 당국이 심사를 진행 중”이라며 “7월이 되면 올 상반기 징수 유예 신청 건수가 정확히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 ‘세수 비상’ 걸린 정부
일선 세무서는 기업들의 세 부담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한 세무서 관계자는 “중소 제조업체나 음식점 등을 중심으로 경기가 안 좋아지며 세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 글로벌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매출이 안 나오는데 비용이 나갈 데는 많고 세금까지 많이 나가니 힘들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세수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법인세 징수 실적이 부진에 빠지면서 정부는 비상에 걸렸다. 기재부 세제실과 예산실은 재정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증권거래세 인하와 부동산 거래절벽 때문에 세금이 예상보다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예산 편성 과정에서 각 국실이 긴밀하게 협조하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세수 부진 양도소득세 등으로 확산 가능성
최근 부동산 거래가 얼어붙으면서 양도소득세 수입도 예상보다 줄어들 수 있다. 소득세 세수 진도율(계획 대비 실제 세수)은 1월 기준 11.4%로 작년 1월보다 0.7%포인트 감소했다. 기재부 당국자는 “법인세와 소득세 중심으로 작년에 비해 납부 실적이 부진하다”고 했다. 3대 세금인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가 동반 부진에 빠지면 성장과 분배 재원을 마련하기 힘들어진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 / 이건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