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위에 공무원, 규제공화국에 내일은 없다] <5> 인재육성 가로막는 교육규제
“실습실이 정말 부족해요. 주 전공, 복수·부전공, 자유전공 학생까지 합하면 컴퓨터공학부 수업을 듣는 학생이 1000명에 육박하는데, 장비는 주 전공 기준이라 5분의 1도 안 되니까요. 교수님도 부족해서 실습 과목은 조교들이 봐주세요.”(한상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학생회장)
4, 5일 서울대를 찾은 동아일보 기자에게 컴퓨터공학부 학생들은 한결같이 대학 정원 규제로 빚어지는 갖가지 학업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국내 최고 대학이라고 하기엔 너무 열악해 보였다.
○ 추락하는 대학 경쟁력
입학정원 55명에 맞춰 구성된 교수진이 실제 정원의 4배에 이르는 학생을 가르치다 보니 분반을 하게 되고, 그만큼 교수당 강좌수가 늘어났다. 한 교수는 “원래는 9학점 강의를 해야 하는데 12학점을 가르치기도 한다”며 “외부에서 큰 연구과제를 맡으면 수업 감면을 해주도록 돼 있지만 말뿐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국내 대학 중 정부 지원을 가장 많이 받는 서울대조차 현실이 이랬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정부가 한쪽에서는 수도권 재개발과 신도시 추진을 계속해 나가면서 대학은 인구가 집중된다는 이유로 성장을 막는 건 난센스”라며 “지방대를 살릴 뾰족한 수가 없으니 잘하는 대학까지 발목을 잡아 격차를 줄이려 하는데, 결국 한국의 고등교육 경쟁력은 다 죽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화숙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학부장은 “이젠 전 세계 이공계 학회 어딜 가도 중국 학생과 교수들로 채워져 있다”며 “지방과의 형평성에만 안주하기에는 중국과 너무나 큰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 교육부 “자율” vs 대학 “통제 벗어날 길 없다”
교육부는 “수도권법이 ‘국민경제 발전과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학교 규모 신설 및 증설을 허가하도록 하고 있지만 대학에 이런 해석을 적용한 적은 없다”며 “인구가 줄어 지방대들이 망해 가는데 수도권 대학 정원을 풀면 뒷감당을 누가 하느냐”고 말했다. 국가 인재 양성이 중요해도 지방들이 다 들고일어날 일을 할 공무원은 없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각 대학이 정해진 총정원 내에서 학과 간 구조조정을 하는 건 자율”이라며 “주요 대학들이 구조조정은 하지 않고 이름값에 기대 ‘학부 장사’를 하려 드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 수도권 대학을 규제한 만큼 지방대 경쟁력이 높아진 것도 아니다. 정부의 ‘반값 등록금’ 기조에 따라 등록금이 10년 이상 동결되다 보니 이제는 기본적인 시설 확보나 교원 확충마저 어렵다는 대학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지방의 한 전문대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대학들이 물가상승분에 상응해 등록금을 올릴 수 있지만 등록금을 올리면 정부의 재정 지원을 끊겠다는 단서를 달아 사실상 교육부가 법이 보장한 대학들의 재정권을 박탈했다”며 “직업교육이 중요한 전문대에서는 특히 실습이 중요한데 돈이 없어 7, 8년 전 장비로 스케일링 실습을 하는 보건학과가 수두룩하다”고 전했다.
강낙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장은 “공무원들이 이렇게 대학을 규제하는 나라는 사실상 한국밖에 없다”며 “한국의 고등교육 예산은 10년째 제자리걸음인데 초등학생이 대학생이 될 시간 동안 엄마가 준 용돈은 똑같았던 셈”이라고 말했다.
“어떤 해는 취업률이 중요하다 하고 그다음 해는 창업이 중요하단 식입니다. 평가지표가 매년 바뀌어 정신이 없어요. 그래도 등록금이 동결이라 정부 예산을 받아야만 살 수 있으니…. 교육부 공무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거죠.” 지방대 A 기획처장의 말이다.
조유라 jyr0101@donga.com·임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