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불'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10일 전기노동자들이 한전의 배전 현장 유지·보수 소홀을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전국 곳곳에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노후 장비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회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전력공사(한전)는 외부의 이물질이 전선에 붙었을 가능성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전하고 있다"며 "언제까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할 수 있을지 두고 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고성 산불이 시작된 원인으로 변압기 폭발이 지목됐지만 한전은 개폐기와 연결된 전선에 이물질이 날아와 닿으면서 불꽃이 발생한 것 같다고 발표했다.
이어 "사고 영상을 보면 사고 전주뿐 아니라 인근에 있는 전신주에서도 아크(불꽃)가 일어나는 걸 볼 수 있다. 어떻게 동일한 시간에 동일하게 이물질 달라붙을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전의 배전설비 유지보수 예산 삭감 등을 지적하면서 배전운영 예산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했다.
앞서 이번 산불의 원인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태양광 정책으로 한전의 막대한 적자가 예상되자 배전설비 유지·보수 예산을 삭감해 부실 관리를 불렀고, 결국 화재로 이어졌다는 분석들이 언론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터져 나왔다.
자유한국당도 탈원전 이후 한전의 수익성 악화로 인해 배전 설비의 유지·보수 예산이 2017년 1조8600억 원에서 지난해 1조4400억 원으로 4000억 원 넘게 급감했다고 밝히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과 '태양광 정책' 때문에 한전의 경영수지가 악화됐고, 무리하게 이런 예산을 삭감했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날 전기노동자들은 "전국 한전 협력업체 비정규직 전기노동자들 576명을 대상으로 지난 7일부터 이틀 동안 휴대폰을 이용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배전선로 유지·보수 공사 건수가 줄었다는 응답이 98.6%였다"며 한전의 유지보수 부실의 근거를 제시했다.
이어 "건설노조는 2017년부터 한전을 상대로 노후 전신주와 설비 및 기기에 대한 전수검사와 선제적 교체·보수를 요구해왔지만 한전은 오히려 유지·보수에 관계된 배전운영 예산을 삭감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번 산불은 피치 못한 천재지변이라기보다는 피할 수 있었던 인재에 가까워 보인다"면서 "한전 측 이야기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면피용 발언일 수밖에 없다는 게 현장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인호 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장은 "전기는 눈에 보이지도, 소리도 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어디서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며 "배전현장 유지보수 예산을 삭감할 게 아니라 오히려 확대해서 녹슨 변압기와 전신주, 개폐기 등을 철저히 조사하고 고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