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 과학평론가
지금 한국 과학기술계는 과도한 실적주의와 부처 간 이기주의, 유연하지 못한 교육과 창의성 부재, 나쁜 연구문화라는 4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기술 사업 제안서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사업을 따낼 수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기존 제조업을 포함해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소프트웨어, 로봇을 넘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까지 4차 산업혁명의 범주에 포함됐다. 대학가는 물론이고 기업체와 연구소들은 이 그늘에 자리하기 위해 기존 연구계획서를 고치고 있다. ‘창조경제’가 유령처럼 떠돌던 때와 같다.
어떤 중소기업은 인터넷도 되지 않는데, 공무원들이 스마트팩토리를 강조해 적용하려 한다며 한탄했다. 과학기술인들은 각종 행정업무와 회계 맞추기에 급급해 연구개발이 뒷전으로 밀린다. 과학기술인지, 과학행정인지 분간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과학기술 교육 현장은 더욱 참담하다. 교육통계를 보면 학교 밖 청소년의 수가 수만 명에 달한다. 이들을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미 학교는 시공간과 교수자, 학습자의 경계가 사라져가고 있는데 말이다. 경직된 교육체계에서 말랑말랑한 창의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한국 과학기술계가 주목해야 하는 건 과학의 본질이다. 과학은 정치나 행정 혹은 부처나 기관의 이기주의가 아니라 호기심에 찬 창의성과 건강한 비판이 본질이다. 창의성과 비판은 협업체계의 근간이 된다. 정부에서 지시하는 방향으로 연구하고 상사가 명령한 대로 따르고, 교수들이 요구한 대로 실험하면 한국 과학기술은 어두운 그늘만 늘어날 것이다.
김재호 과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