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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복 해외여행 NO!…미식, 미술관 등 테마 여행 떠나는 한국 여행객들

입력 | 2019-04-12 15:21:00

동아일보DB


“사모님께 다시 한 번만 전화 부탁드려 주시겠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행사에 중년 남성이 여행상품 문의를 하면 상담사가 이렇게 답했다. 기념일이나 제삿날, 자녀 시험일정을 잘 모르는 남편이 무턱대고 여행 계획을 잡았다가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와 취소하거나 일정을 바꾸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도 옛말이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50대 이상 남성들이 직접 여행사를 찾아와 여행 상품을 꼼꼼하게 비교하고, 스마트 폰에서 가족 일정을 확인해 여행날짜를 정하는 풍경이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이후 30년이 흘렀다. 해외로 떠나는 한국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여행의 트렌드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장소에 맞지 않게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유럽 여행을 떠난다거나 일주일에 4~5개 도시를 방문하는 ‘가봤다’ 여행은 과거의 일. 이제는 공연관람을 위해 턱시도를 준비하고 여행을 떠나거나 한 도시에서 일주일, 한달을 체류하며 문화를 맛보는 등 여행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다.

● 특별한 장소 선호…중장년층 유럽행 증가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유럽, 미국, 동남아시아를 가더라도 남들이 다 가는 도시와 장소보다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특별한 곳을 가는 분위기다. 하나투어 이혁 인솔자는 “푸켓, 몰디브 등 휴양지를 선호했던 신혼여행도 최근에는 아이슬란드 오로라 여행,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여행 등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들을 선호하고 있다”며 “여행을 떠나는 목적도 분명해서 아프리카 출사 여행, 도쿄 미식 여행, 파리 미술관 투어 등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중국, 동남아 등 가까운 여행지를 선호했던 50대 이상 여행객들이 좀 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유럽으로 떠나는 것도 주목할 만 하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2013~2018년 TV에서 방송된 ‘꽃보다 할배’의 영향으로 유럽 여행을 원하는 중장년층 여행객이 늘었다”고 말했다. 특히 70, 80대의 여행객이 크게 늘었다. 노랑풍선 김철동 인솔자는 “자녀들이 부모의 환갑 또는 고희를 맞아 잔치를 열기 보다는 유럽 여행을 보내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국내에서 이상이 없었지만 해외의 낯선 환경에 시차 문제로 나타나지 않았던 건강 문제로 정상적인 여행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김 인솔자는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오는 것을 추천하는 편이다. 또 복용약이 있다면 넉넉하게 들고 오고 꼭 기내에 휴대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 비수기 성수기 구분 사라지고 쇼핑도 합리적으로

예전에는 여행 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이 구분됐다. 하지만 최근 직장인들은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에 휴가도 자유롭게 쓰는 분위기가 정착되면서 비성수기 때도 여행을 가는 경우가 많다. 또 성수기 때 호텔, 비행기 등이 비수기 때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것도 영향을 끼쳤다. 모두투어 나영주 인솔자는 “그만큼 여행 경비를 아껴보자는 실속파들이 많아졌고, 유럽만 해도 낮보다 밤에 볼거리가 풍부한 지역이 많아 비수기로 꼽히는 밤이 긴 겨울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인솔자들이 추천하는 가장 여행 떠나기 좋은 시기는 언제일까. 나 인솔자는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것이 진짜 여행”이라는 현답(賢答)을 했다.

해외여행을 경험한 사람이 귀하던 시절, 해외에 나가면 주변 사람들에게 줄 별 쓸모도 없는 기념품을 가방 가득 사서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최근 한국 여행객들의 트렌드는 ‘합리적 쇼핑’이다. 롯데관광 류용희 인솔자는 “10년 전에 비해 한국 여행객들의 씀씀이는 많이 줄었다”며 “대부분 면세점에서 쇼핑을 끝내고 한국에서 살 수 없거나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 물품만 구매한다 기념품조차도 사진으로 대신하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국력이 커지고 한국인 여행객의 수준도 높아지면서 해외에서 한국인을 대하는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한 인솔자는 “예전에는 호텔이나 식당에서 한국인을 제대로 대접해주지 않은 분위기였다면 이젠 에티켓도 좋고, 영어도 잘하는 한국인을 선호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