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100년맞이 기획 가짜뉴스와의 전쟁] <하> EU의 ‘미디어 리터러시’ 현장
지난달 19일 벨기에 브뤼셀 시네마팰리스에서 열린 ‘2019 미디어 리터러시 콘퍼런스’에 ‘가짜뉴스’를 감시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려는 정부와 규제기관, 미디어 관계자들이 모였다. 이날 마리야 가브리엘 유럽연합(EU) 디지털경제 및 사회 집행위원은 “디지털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도전 과제가 생겼다. 비판적인 분석능력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시민 교육이 숙제”라고 강조했다. EU는 매년 미디어 리터러시 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 제공
지난달 19일 벨기에 브뤼셀 시네마팰리스에서 열린 ‘2019 미디어 리터러시 콘퍼런스’에서 상영된 동영상에 등장한 마지막 문구다. 리터러시는 책, 신문 등 기록물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고 관련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디지털 시대에선 쏟아지는 정보 가운데 가짜뉴스를 걸러내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꼭 필요한 능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매년 미디어 리터러시 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가짜뉴스’를 감시하고 처벌하려는 정계와 규제기관, 언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관계자들이 한곳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해법을 마련하는 자리다. 올해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시민 교육 차원에서 추진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마리야 가브리엘 EU 디지털경제 및 사회 집행위원은 개막사에서 “20세기 들어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문맹률이 떨어졌지만 디지털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도전 과제가 생겼다”며 “비판적인 분석 능력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시민 교육이 숙제”라고 강조했다.
○ ‘가짜뉴스’ 체험으로 배우는 팩트체크 방법
최종 심사에 오른 라트비아팀은 인터넷을 처음 접하는 만 5∼8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미디어 교육을 시행하는 단체였다. 캠페인 구호는 ‘보이는 것을 자동으로 믿지 마라’. 프랑스팀은 만 12∼18세 100만 명과 재소자 600여 명을 대상으로 청소년에게 인기 높은 온라인 카툰에서 의견과 사실, 가짜와 진짜 뉴스를 구별하는 훈련과 토론을 진행했다. 북마케도니아팀은 고교생이 기자가 돼 신문을 발행하고 가짜뉴스를 가려내도록 했다. 스페인팀은 과학 분야의 잘못된 정보와 지식을 골라내게 만들었다.
최종 수상은 3개 팀에 돌아갔다. 아일랜드 ‘HTML 히어로’팀은 전국 3400개 학교의 초등학교 저학년(만 7∼9세)을 대상으로 온라인 뉴스와 광고에서 거짓을 가려내고 올바른 소통법을 교육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핀란드의 ‘미디어 미스테이크’팀은 방송사 보도국에서 매일 겪는 윤리 및 도덕 갈등과 가짜뉴스를 구별한 뒤 토론하게 했다. 벨기에 ‘미디어 매쉬업’팀은 만 12∼18세 청소년이 함께 모여 영상을 교묘히 편집해 직접 가짜뉴스를 만들어보고 토론하게 만들었다.
○ 민관이 함께하는 가짜뉴스 방어 총력전
벨기에 공영방송 RTBF의 장폴 필리포 사무총장은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의 핵심은 투명성”이라며 “방송사는 콘텐츠 생산 기준을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우리 방송사는) 매년 스튜디오를 시청자들에게 개방하고 궁금증을 해소시켜 신뢰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RTL방송의 클라우스 그레베니흐 부대표도 “별도 검증팀을 꾸려 뉴스 방송 전 팩트체크를 한다. 기자 대상 팩트체크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라며 “광고가 편집권에 과도하게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광고와 콘텐츠를 구별하는 어린이용 미디어 리터러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들도 팩트체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헬가 트뤼펠 유럽의회 의원은 “아날로그 시대에는 언론 자유가 중요했다. 독일에서는 모든 인터넷 규제가 해롭다고 여겼다”며 “그러나 현재는 (가짜뉴스의 폐해를 없앨) 적절한 규제 없이는 인터넷을 자유롭게 즐길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트뤼펠 의원은 “소외계층과 노인 대상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방법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EU, 선거 앞두고 가짜뉴스 적발에 총력
EU는 다음 달로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가짜뉴스가 범람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EU 회의론’을 퍼뜨리려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세력들이 가짜뉴스를 대량으로 생산할 것으로 보고 벌써부터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최근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EU 외부에 반(反)유럽 세력이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와 여러 유럽의 선거 등에서 민주주의에 영향을 끼치려고 한다”고 경고했다. EU는 가짜뉴스 진원지로 러시아를 지목했다. 안드루스 안시프 EU 집행위원회 부의장은 “러시아가 잘못된 정보를 퍼뜨린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며 “서방 세계를 분열시키고 약화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브뤼셀=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