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文대통령과 북핵해법 간극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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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현지 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내놓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빅딜’에 합의하지 않으면 북한이 원하는 대북제재 해제는 없다고 못 박은 것. ‘제대로 된 합의’를 강조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대화의 돌파구로 제시한 ‘굿 이너프 딜’에 대해서도 “지금은 빅딜을 논의하고 있다”며 거리를 뒀다. 3차 북-미 정상회담의 문은 열어뒀지만 북-미 간극을 좁힐 방법론은 한미 정상이 합의하지 못한 것이다.
○ 문 대통령 면전에서 제재 완화 불가 외친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 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제재 완화를 고려하느냐”는 질문에 즉각 “아니다(No). 제재가 그대로(in place) 유지되길 원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어 “솔직히 말해서 (제재를) 상당히 늘려야 한다는 반대 목소리도 있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관계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현재 제재가 적정한 수준(fair level)”이라며 “언제든 (제재를) 늘릴 수 있지만 현재로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는 뒤집어 보면 북한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언제든 제재를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그 대신 북한과의 협상 카드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확대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인도주의적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며 “한국이 북한에 식료품 등을 지원하는 것은 괜찮다”고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전날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대북제재에) 약간의 여지를 두고 싶다. 때로는 비자 문제 같은 것”이라며 인도적 지원 단체의 방북 제한 완화를 시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 확대는 이미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전부터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제안했던 보상책.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사실상 대북 경제 제재의 전면 해제를 요구했던 만큼, 인도적 지원은 북한으로서는 대화 궤도 이탈을 막는 ‘최소한의 당근’이라는 분석이 많다.
○ 한미 조율 없이 내놨다가 무력화된 ‘조기 수확론’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제대로 된 합의’ ‘옳은 합의(right deal)’를 강조하며 청와대가 제시한 ‘굿 이너프 딜’이나 ‘조기 수확(early harvest)’ 방안에 대한 이견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제안한 스몰딜을 받아들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어떤 딜(deal)인지 봐야 한다. 다양한 작은 합의들이 있고 이를 단계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며 “지금 우리는 빅딜을 논의하고 있다. 빅딜은 핵무기를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한미 간에 전혀 접점을 찾지 못한 ‘워싱턴 노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역시 “참 어두운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것 같다”고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미 간 큰 이견이 노출됐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한미 간 그런 의견들에 관해 아주 허심탄회한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 / 워싱턴=한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