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거울이 발명된 후에도 패션에서 ‘엿보기’는 항상 존재했습니다. 패션은 굳이 묻지 않아도 입는 이의 사고방식이나 성격, 취향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길거리에 넘쳐 나는 사람들의 패션은 전문가의 엿보기를 통해 분석돼 ‘스트리트 패션’이라는 전문용어로 탄생했습니다. 사람들의 기호와 성향을 파악하고 그들이 다음에 무엇을 원하는지 예측하게 되죠. 그래서 패션은 늘 엿보기를 통해서 전파되고 유행됩니다.
과거 왕족이나 귀족들의 파티에서 선보인 패션을 훑으며 눈을 통한 엿보기로 평민계층이 추종했다면 현대에 와서는 카메라라는 새로운 눈을 통해 패션의 엿보기가 시작됐습니다. 패션 매거진의 등장으로 직접 엿보기 하는 수고를 하지 않더라도 전문가의 시선과 손길로 다듬어진 멋진 장면들을 즐길 수 있게 됐죠.
직접적으로 패션을 통한 엿보기는 패션쇼 런웨이에서 이루어집니다. 모델들이 눈앞에서 아무런 대사 없이 음악에 맞춰 런웨이를 활보합니다. 실제로 만질 수 있고 입을 수 있는 의상들로 한편의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 같습니다. 이 직접적인 엿보기를 통해 에디터는 소비자들에게 유행을 전파하고 바이어는 소비자들에게 의상을 공급해 패션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엿보기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단톡방 동영상’이다 ‘카톡방 몰카’다 하며 뉴스에서 하루도 빠질 날이 없습니다. 이 엿보기를 만든 사람도 문제고 유포한 사람도 문제겠지요. 하지만 건전한 엿보기도 은근히 많답니다. 범인을 검거하기 위한 잠복근무도 엿보기이고 아이의 첫 등굣길을 몰래 지켜보는 어머니의 시선도 엿보기입니다. 물론 패션을 통한 엿보기도 그중의 하나이고요. 모쪼록 인간의 호기심이 만들어낸 이 엿보기가 건전하게 쓰였으면 합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