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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지민구]르노삼성이 주는 교훈

입력 | 2019-04-15 03:00:00


11일 르노삼성자동차 협력업체 측의 애로 사항을 청취하고 있는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왼쪽에서 두 번째). 부산=뉴시스


지민구 산업1부 기자

“합의 없이 끝났습니다. 다음 협상 일정요? 글쎄요….”

요새 자동차 담당 기자들은 매일 통과의례처럼 르노삼성자동차 사측이나 노동조합 관계자와 통화를 한다. 답변도 매번 비슷하다. 지난해 6월 시작된 르노삼성 노사 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이 10개월 동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임·단협 타결이 지연되자 노조는 지난해 10월부터 56차례 226시간 동안 부분파업을 감행했다. 기본급 인상과 추가 인력 채용 등의 요구사항을 사측이 수용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사측은 노조의 부분파업 6개월 동안 매출액이 2500억 원 줄고 생산량은 1만3000대 감소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르노삼성이 12일 공시한 감사보고서에도 부분파업에 따른 손실이 묻어났다. 지난해 매출액은 5조599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6.6% 줄었다. 1년 만에 매출액 1조1105억 원이 증발한 것이다. 영업이익 역시 3541억 원으로 11.8% 줄어들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동시에 나빠진 건 2009년 이후 처음이다.

르노삼성이 2년 동안 신차를 선보이지 않은 탓도 있지만 노조의 부분파업 영향으로 생산량이 줄고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된 점 역시 영향을 미쳤다.

더 큰 문제는 올해다. 올해 1분기(1∼3월) 르노삼성의 누적 판매량은 3만9210대로 전년 대비 39.6% 줄어들었다. 연간 생산량은 지난해 22만7577대에서 올해 16만 대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매출액으로는 약 1조5000억 원이 사라지는 셈이다. 부산 협력업체의 피해까지 고려하면 수조 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르노삼성 협력업체 관계자는 “노조가 파업 실시 여부조차 미리 알려주지 않아 매일매일 피 말리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1조 원을 잃었고, 수조 원을 날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노사는 여전히 평행선이다. 르노그룹 본사는 2020년 부산공장에 배정할 예정인 신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XM3의 배정 물량을 축소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노조를 압박했다. 선명성을 앞세워 지난해 12월 출범한 노조 집행부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르노삼성의 한 직원은 “생산 물량 배정 여부를 임·단협 테이블에 끌어들이는 르노그룹 본사가 얄밉기도 하지만 상황을 지금까지 끌고 온 노조 집행부의 의도도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르노삼성 노사는 과거 3년간 분규 없이 임·단협을 타결했고, 이때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노조는 “인건비를 줄인 결과”라고 항변하지만 노사 다툼이 없었을 때 실적이 좋았다는 것은 숫자가 증명한다. 강경 대응이 노조의 1년 성과물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회사의 미래를 담보하진 못한다. 16일 이후 다시 열릴 임·단협에서 노조는 양보안으로 협상에 임하고, 사측 역시 납득할 만한 보상안으로 타협을 이끌어내야 최악을 피할 수 있다. 매출액이 수조 원 감소한 채로 내년 4월 감사보고서가 나올 때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지민구 산업1부 기자 waru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