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트럼프-文대통령 동시 압박

○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 얻긴 분명 힘들 것”

미국을 겨냥해선 “지난번(하노이)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발언도 남겼다. 하노이 정상회담 테이블에서 직접 영변 핵시설 폐기를 약속했던 제안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비핵화 조치는 기대하지 말라는 신호로도 읽힌다. 이는 김 위원장의 ‘입’으로 부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앞서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최 부상은 지난달 1일 하노이 결렬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직까지 (영변) 핵 시설 전체를 폐기 대상으로 내놔본 역사가 없다. 영변 핵 폐기를 해도 유엔 제재 해제는 안 된다고 하니 이 계산법이 어디에 기초한 것인지 혼돈이 온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이라며 대화 시한도 내걸었다. 연말까지 대화 창구는 열어뒀지만 미국이 북한을 설득할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 문 대통령 겨냥 “중재자 말고 당사자 역할 하라”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선 “남조선 당국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돼라”고 말했다. 아울러 “진실로 북남(남북) 관계 개선과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갈 의향이라면 우리의 입장과 의지에 공감하고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도 했다. 사실상 북한과의 입장 통일을 주문한 한미 ‘갈라치기’ 전략이다.
이번 시정연설로 한미를 동시에 공략한 김 위원장은 14일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라는 새로운 칭호를 얻고 명실상부한 국가수반이 됐음을 알렸다. 조선중앙방송은 이날 김일성광장에서 13일 개최된 ‘국무위원장 재추대 경축 중앙군중대회’ 소식을 전하며 “김정은 동지께서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이며 공화국의 최고 영도자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되신 대정치사변을 맞이하여”라고 언급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이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