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장벽’에 막힌 중년 창업
창업자금을 신청할 순 있다고 하더라도 나이 때문에 떨어지거나 지원금액에서 차별을 받는 경우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34억 원 규모 사업인 ‘관광벤처사업 발굴 및 지원’은 만 39세 미만에 1점을 더 준다. 100점 만점인 채점표에서 1점은 당락을 가를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장애인들만 지원할 수 있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장애인 창업사업화 지원’은 연령별로 지원금액이 다르다. 최대 지원금액이 만 39세 미만은 2000만 원, 만 40세 이상은 1000만 원이다.
운영자금 융통에서도 중년은 불리하다. 사업체를 운영하다 보면 인건비와 시설비 때문에 자금이 필요한 경우가 많지만 돈 빌리기도 상대적으로 힘들다. 2016년 제조업체를 창업한 박모 씨(48)는 “사업자금을 빌리러 다니면서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대출을 거절당하곤 하는데, 어떤 때는 인격적인 모독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청년전용자금’이란 이름으로 만 39세 미만 창업가에게는 연 2.0%의 저금리로 사업자금을 빌려주고 있다. 지난해 5월 시행된 개정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만 35세 미만 청년 사업자는 수도권에선 법인세 50%, 그 외 지역에선 법인세 100% 감면도 받는다.
청년들의 창업을 독려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지만 경험이 많고 사회적 인맥까지 갖춘 중년층의 창업은 그 성공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벤저민 존스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성장률 기준으로 상위 0.1% 내에 드는 기업의 창업자들은 창업 당시 평균 나이가 45세였다. 연구팀은 2007∼2014년 미국의 창업가 27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 연구팀은 “40대 이상 창업자는 한 업계에 오래 있으면서 자본과 사회적 인맥을 확보한 후 창업에 나서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창업 지원 정책의 수혜 기준을 나이가 아닌 사업 성공 가능성에 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창업 국가로 불리는 이스라엘은 창업 지원에 나이 제한이 없다. 1991년 시작돼 이스라엘의 대표적 창업 지원 사업으로 자리 잡은 ‘기술 인큐베이터 시스템’은 철저히 창업 기술과 아이디어를 지원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스라엘 혁신청 관계자는 “하이테크 산업에서는 기술력을 축적한 중년층 창업이 많아 이들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창업 지원에 나이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등으로 중년 창업은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어 정부의 중년층 창업 지원 소홀은 사회 전체 일자리 증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정동 대통령경제과학특별보좌관(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은 “경험을 바탕으로 내실 있는 기업을 일궈낼 수 있는 중년층 창업을 외면해선 안 된다”며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안정적으로 성장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40대 이상 창업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