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석 소장’ 이름으로 스마트폰 문자가 온 순간,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응? 소장님 돌아가셨는데…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하늘에서 온 편지 같은 건가 하면서 열어보니(사람은 종종 터무니없이 머리가 안 돌아가는 때가 있다) 고인의 가족이었다.
“삼가 감사말씀 드립니다…” 세상을 떠난 분의 휴대전화를 그냥 해지하지 못하고 그 전화로 마지막 인사를 보낸 유족들의 마음을 나는 알 것 같았다. 내 전화에도 그대로인 그 번호로 “도발 잘 보고 있다”는 문자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他社 후배에게도 자극을 준 언론인
고 최우석 전 중앙일보 주필
“여자들은 작은 정의에 예민하다”는 말을 해준 것도 그 분이었다. 실력이 비슷했던 여기자가 둘 있었는데 한 사람은 작은 정의에 예민해 늘 부르르 떨었고, 또 한 사람은 그 반대였다. 결국 부르르 여기자가 일찍 회사를 떠났다며 뭐가 더 중요한지 잘 보라고, 남자들이 알려주지 않는 사회생활의 지혜도 말해주었다.
들은 때는 열심히 들었는데 그때뿐이다. 나는 여전히 작은 정의에 파르르 떨고(그러고도 살아남은 게 다행이다), 공부 해야겠다는 마음만으로 입때껏 살고 있다(죄송해요 소장님).
‘초창기의 경제기획원’ 원고를 보니
양심이 찔려 그 분이 몇 해 전 읽어보라며 보내준 원고 ‘초창기의 경제기획원, 장기영·김학렬 부총리를 중심으로-한 출입기자의 체험적 풍경’을 다시 들여다봤다. 1965~1971년 젊은 기자 최우석이 체험한 경제 컨트롤타워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경제해법을 찾고 싶었다(다행히도 그 원고는 마음대로 활용하라고 하셨다).
물론 기획원이 예산, 기획, 외자도입, 심사평가 등 핵심 권한을 장악한 막강 부처이니 당연한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쉽다면, 1961년 기획원 출범 이후 3년 간 수장이 7명이나 바뀐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장기영의 약속 “6개월만 기다려달라”
1963년 대선에서 15만 표 차로 간신히 제3공화국을 출범시킨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실적으로 정통성을 입증해야 했다. 63년 말 최두선 총리-김유택 부총리의 초대 내각은 경제 혼란 수습에 실패했다.
고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못하면 경제수석이 나설 수밖에
결국 김학렬은 1969년 5월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2년 반 동안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목표를 초과달성하고는 불꽃처럼 떠났다(당시 췌장암은 불치병이었다).
고 김학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실제로 김학렬 취임 첫해인 1969년 경제성장률이 무려 14.5%. 건국 이후 최고성적이었다. 면도칼 같은 논리와 날카로움으로 난제를 하나씩 풀어간 결과다.
관치경제 할 만큼 실력은 되는가
오해말기 바란다. 지금도 1960년대 같은 관치경제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므로. 당시는 민간경제의 수준이 관료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정부주도 경제’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경제부총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거다. 민관의 수준이 역전됐으면 규제를 틀어쥔 관치경제도 서비스행정으로 역전시켜야 한다. 단, 부총리의 아이디어와 추진력, 실행력은 그대로 지닌 채. 실력과 애국심으로 무장한 공무원들을 공정한 인사로 혹독하게 훈련시키면서.
마침 우리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재웅 쏘카 대표의 혁신성장추진단 민간본부장 사퇴를 의지부족 때문이라고 비판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 추진단이 그렇게 중요했다면 경제부총리는 왜 손놓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홍남기 패싱’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닌가.
차라리 경제수석을 부총리로 임명하시라
경제부총리가 제 역할을 못하면 차라리 김학렬처럼 경제수석을 부총리로 임명하기 바란다. 문재인 정부에선 윤종원 경제수석보다 오랜 인싸(인사이더) 김수현 정책실장을 부총리 시켜야 한다.
그럼 내각을 허수아비처럼 만들어 죄 청와대만 바라봐야 했던 모습은 사라질 터다. 솔직히 말하자면,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보고 싶다.
경제기자로도 이름을 날렸던 최우석은 “폭풍 같은 김학렬 시대가 끝나면서 거인(巨人)과 기인(奇人)들의 시대를 마감하고 보통사람의 시대가 열렸다”고 원고를 접었다.
과거의 취재수첩과 관계기록, 신문스크랩과 보고 들은 경험을 50년 후 글로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고개가 숙여진다. 언론계에도 최우석과 함께 거인과 기인들의 시대가 가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아무리 훌륭한 언론인이래도 내게 잘해준 분이 더 훌륭한 법이다…). 죽었다 깨도 최우석처럼 될 수 없는 나는 후배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