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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보는 앵글’ 아닌 일상적 느낌의 북한을 담는다면…

입력 | 2019-04-16 16:30:00

올 4월 남한 예술단의 북한 평양 공연 당시 평양시민들의 출근길 모습. 휴대전화를 보며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동아일보DB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진기자가 북한을 방문하면 안내원들이 여럿 붙었다. 보통 기자 한 명당 3, 4명 정도 안내원이 붙는데 이들은 서로 소속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로 따지면 경찰과 국정원 등에서 따로 나오는 셈이다. 그 이유는 기자의 안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북한이 원하지 않는 장면을 촬영할까봐서다. 굳이 북한이 원하지 않는 것을 찍으려 드는 남쪽 기자들과 북한 안내원의 신경전은 남북 관계에서 항상 존재했던 갈등이다.

북한은 남쪽에서 온 기자들이 ‘세팅 된 장면’만을 기록해 돌아가길 기대한다. 기자로서는 그런 장면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내원의 눈을 피해 높은 건물이나 달리는 버스 위에서 바닥 쪽을 찍는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진기자들이 찍은 북한 주민의 배경은 건물이 아니라 콘크리트 바닥이다. 어색한 인물사진이다.

북한이 원하지 않지만 북한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법이 위성사진이다. 북한 내부의 이미지가 한정된 상황에서 위성사진은 북한의 현재를 설명하는 중요한 도구였다. 특히 북한이 핵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이어가던 시절 미국 정보기관과 한국 언론들은 북한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 내부의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위성사진은 매우 비인간적인 앵글이다. 표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떠 있는 위성이 ‘나’를 지켜보는 게 유쾌할 리 없다. 정상적인 국가간의 보도에서 상대방 국가의 모습을 위성으로 독자에게 보여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경기 파주시 도라산 전망대 등에서 4km 떨어진 북한 선전마을을 망원렌즈로 찍은 이미지도 정상적인 앵글이 아니다. 위성이나 망원렌즈로 어떤 지역을 본다는 것은 공격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위성과 카메라 대신에 무기가 위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다’와 총을 ‘쏘다’의 영어 단어가 같이 ‘shoot’이라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런데 지난해 한국 사진기자들은 남북 정상이 판문점을 함께 넘고 백두산을 배경으로 악수를 하는 환상적인 순간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근접해서 찍은 사진은 두 정상의 얼굴에 나타난 상기된 표정뿐만 아니라 백두산 천지의 흙과 나무의 디테일까지 담고 있어서 현장의 감동은 보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도 전달됐다. 우리 대표단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북한 주민들의 표정과 패션도 고스란히 기록됐다.

하지만 북미 정상 간 하노이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영향으로 남북 관계에 변화가 생기면서 취재 방식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조짐이다. 북한은 또 다시 위성에서 감시해야 하는 대상이고, 주민들의 모습은 접경지역에서 초망원렌즈로 기록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방식이 아닌 앵글로 기록된 풍경은 낯설다. 사실 민족의 반쪽이라고 하는 북한은 주로 부정적이거나 흐릿한 이미지였다. 잡힐 듯 말듯 흐릿하게 포착된 접경지역 주민, 하늘에서 본 위성사진에서 점으로 표시된 주민은 북한의 비정상성을 증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습으로 북한이 기록되고 전달된다면 보는 사람의 뇌리에 또다시 비정상적 국가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북한과 북한 사람들이 이상한 존재로 기억되는 것, 한반도의 평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까이서 찍은 사진은 보는 이에게 친근함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해 북한을 바라보는 방식에 큰 변화가 있겠다는 기대를 가졌다. 멀리서 훔쳐보는 듯한 앵글이 아닌 일상적인 느낌을 주는 앵글로 북한을 담을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정상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몇 발자국을 내딛었던 북한은 이제 더 국제사회의 관심 대상이 됐다.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는 계속 특별한 렌즈로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m 앞에서 볼 수 있었던 북한 지도자와 북한 주민. 이들이 다시 위성사진과 초망원렌즈로 흐릿하게 기록되지 않았으면 한다. 북한이 우리의 카메라 앞에 다시 서서 정상국가의 보여주기로 돌아가길 기대한다. 위성으로 본 북한 주민보다는 신경전을 펼치더라도 남쪽 카메라 기자들의 시선이 훨씬 인간적이다.

변영욱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