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롱보드 라이더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고효주 씨.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며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활동적인 취미를 찾다가 우연히 롱보드를 타게 됐다. 롱보드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회사에서 남을 위한 일을 하는 것보다 지금 자신에게 재미있는 일을 해보겠다며 사표를 냈다. 회사에서 앞으로 하게 될 경험보다 롱보드와 함께 더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한다. 그는 세계 주요 도시에서 롱보드를 타며 동영상 콘텐츠를 올렸다. 그의 유튜브 계정은 20만 명, 인스타그램은 50만 명이 넘는 사람이 구독한다. 그는 이제 세계를 무대로 브랜드와 협업을 하고 광고를 찍으며,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있다.
안무가 리아킴 씨. 방송 대담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는 안무가로서 목표로 삼던 세계 대회에서 우승을 했지만, 막상 한국에서는 어두운 지하 연습실에서 어렵게 생활하며 슬럼프에 빠졌다. 새로운 도전을 찾아 자신이 안무를 가르쳤던 제자 가수들이 심사위원으로 있는 댄스 경연대회에 나갔지만 참패했다. 하지만 그는 실패로부터 자신이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목표를 찾아냈고, 유튜브를 자신의 새로운 무대로 생각했다. 지금은 댄스 스튜디오를 열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유튜브는 1500만 명 이상의 구독자가 있다. 그는 사람들이 누구나 춤을 쉽게 추고 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어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에 나온 벤지(배제욱) 씨는 4세부터 클래식을 시작해 세계적인 음악대학에 들어갔지만 보다 다양한 음악을 해보고 싶어 부모와 싸워가며 대학을 그만두었고 지금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들에게 왜 잘 다니던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느냐고, 왜 대학을 가지 않고 춤을 추는지, 왜 어렵게 들어간 일류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중간에 그만두는지, 왜 오후 늦게 출근하는 바텐더가 되려고 하느냐고 의심 어린 질문이나 질책을 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지금은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나중에 나이 들어 어떻게 하려는지 걱정할지도 모른다. 물론 본인들에게 그런 걱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과연 앞으로 ‘안정된 직장’을 가질 수 있을까. 40대 중후반이면 대부분의 직장인은 불안해진다.
나는 이 네 사람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들이 ‘지금을 살아감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경우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나중이라 생각한다. 네 사람은 ‘앞으로 안정된 일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아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모험을 하고 있다. 이 모험의 끝이 어떤 결론이 날지는 누구도 모른다. 대다수 직장인 커리어의 끝이 어떤 결론이 날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사이드웨이(Sideways)’를 보면 원예학을 공부하며 식당에서 일하는 마야와 성공하지 못한 소설가 마일스라는 인물이 와인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일스는 1961년산 슈발 블랑(Cheval Blanc)이라는 귀한 와인을 갖고 있었다. 마야가 언제 마실 거냐고 묻자, 마일스는 특별한 때가 오면 마실 거라고 답한다. 이때 마야는 “당신이 1961년산 슈발 블랑을 따는 날이 바로 특별한 때”라고 말한다.
앞서 살펴본 네 사람의 이야기는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여정을 보여준다. 이들은 특별한 날을 기다리며 지금 자신에게 의미 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지금 특별한 일을 하면서 오늘을 살고 있다. 이들의 내일에 행운이 함께하길 빈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