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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박은서]훌륭한 판결과 나쁜 화해

입력 | 2019-04-17 03:00:00


15일 공익위원안을 발표하고 있는 박수근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장. 뉴시스


박은서 정책사회부 기자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가 지난해 7월부터 시작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를 이달 15일 끝마쳤다. 노사정 합의문은 없었다. 노동계 요구는 대폭 수용하고 경영계 요구는 ‘찔끔’ 수용한 공익위원들의 권고안만 두 차례 내놓았다.

정부 추천 공익위원인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5일 기자회견에서 “1, 2차 권고안은 (공익위원) 만장일치였다”며 높게 평가했다. 그는 “중재하는 것이 공익위원의 역할”이라며 “노사정 협상이 교착 상태여서 내놓은 중재안”이라고 말했다.

9개월간 노사 입장은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경영계는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노조 힘만 더 세질 수 있으니 대체근로 허용 등 경영 방어수단을 달라”고 요구했다. 노동계는 “ILO 핵심협약 비준은 거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박수근 노사관계 개선위원장(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노사 입장을 좁히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러나 잘 안 좁혀지는 게 우리나라 현실 같다”고 토로했다.

경사노위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시킨 사회적 대화 기구다. 정규직 노조와 대기업 위주였던 기존 노사정위원회를 확대해 청년, 비정규직, 중견·중소기업, 소상공인 대표들까지 아울렀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이들이 모여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와 화해를 이끌어내는 게 경사노위의 존재 이유다.

그러나 공익위원들의 행태는 이런 존재 이유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합의나 화해 없이 공익위원들이 도출한 권고안은 사실상 ‘판결’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조법 개정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경영계에 노조 공격권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경영계는 “실체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사회적 대화 기구의 공익위원들이 만장일치로 합의했다고 강조한 권고안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셈이다.

특히 박수근 위원장은 “노사정이 협의하려면 정부 입장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에 경영계 관계자는 “사실상 정부가 주도해 ILO 협약 비준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으로 들렸다”고 말했다.

법조계에는 “나쁜 ‘화해’가 훌륭한 ‘재판’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명쾌하지만 갈등을 야기하는 재판(판결)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도 갈등을 남기지 않는 화해가 더 낫다는 의미다. 경사노위가 “사회적 대화 기구가 아닌 갈등 기구”란 말을 듣지 않으려면 판결이 아닌 화해에 주력해야 한다. 그것이 경사노위와 공익위원들의 존재 이유다.

박은서 정책사회부 기자 cl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