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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에 오물 던지고 위협… 7개월간 8차례 행패부려 경찰 신고

입력 | 2019-04-18 03:00:00

[진주 아파트 묻지마 방화 살인]잇단 폭력에도 방치된 범인
“벌레 던진다” “시끄럽다” 이유로 여성 둘만 사는 윗집 찾아가 난동
수차례 경찰 신고했지만 허사… 피해자 딸 “사람 죽으니 몰려와” 분통
9년 전에도 ‘묻지마 폭행’ 전력… 경찰 “정신병력 확인 어려워 한계”




“어머니가 하도 시달려서 ‘사람이 죽어나가야 처리해줄 거냐’고 따지니까 경찰이 ‘당장 피해보신 거 없으시잖아요’라고 했다네요.”

경남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들을 무차별 살해한 안모 씨(42)의 윗집에 사는 강모 씨(54)의 딸 A 씨(31·여)는 17일 동아일보와 만나 분통을 터뜨렸다. 친척 최모 양(19)과 이 아파트에서 단둘이 사는 강 씨는 2년여 전부터 아랫집 406호에 사는 안 씨로부터 ‘윗집에서 벌레를 털어 몸이 가렵다’는 등의 이유로 수차례 위협을 당해왔다. 참다못한 강 씨가 2018년 9월부터 다섯 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안 씨가 휘두른 흉기에 강 씨는 중상을 입었고 1급 시각장애와 뇌병변이 있는 최 양은 숨졌다.

○ 7개월간 8차례 신고… 보호 조치 없어

12세 초등학생을 포함한 아파트 주민 5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친 이번 방화 살인사건은 윗집 주민이 경찰에 안 씨를 다섯 차례나 신고했는데도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벌어진 참사였다. 2018년 9월부터 아파트 주민 등은 안 씨를 8차례 경찰에 신고했다. “사람이 죽어야 되겠느냐”던 강 씨의 항변은 결국 현실이 됐다. A 씨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 결국 사람이 죽고 다치고서야 경찰이 몰려왔다”고 분개했다.

2015년 12월 이 아파트로 혼자 이사 온 안 씨는 폭력적 성향으로 줄곧 동네의 골칫거리였다. 안 씨는 2010년 5월 진주 가좌동의 한 대로변에서 행인이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며 흉기를 휘둘러 머리를 다치게 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심신 미약을 이유로 형을 감경받아 집행유예로 출소한 전력이 있다. 당시 안 씨는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을 받고 편집형 정신분열병을 앓는 게 인정돼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주민들에 따르면 2년여 전부터 강 씨를 괴롭히던 안 씨의 난동은 올 2월 말부터 정도가 심해졌다고 한다. 안 씨는 출근하던 강 씨에게 날계란을 던지고 고교 3학년생이던 최 양을 쫓아가 욕설을 퍼부었다. 강 씨 집 현관문에 오물을 뿌리고 초인종을 누르며 위협했다. 강 씨는 2월 28일부터 한 달 반 동안 안 씨의 오물 투척과 층간소음 위협을 4차례 경찰에 신고하고 고통을 호소했지만 격리나 신변보호 조치는 없었다.

강 씨는 지난달 3일 안 씨가 오물을 투척한 현관문 앞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 그로부터 9일 뒤 또 오물을 던진 안 씨의 모습을 CCTV로 확인한 경찰은 안 씨를 체포했다가 ‘경미한 사안’이라며 당일 풀어줬다. 그 다음 날 안 씨는 층간소음이 심하다며 강 씨 집을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

○ 지난해 말부터 수차례 정신이상 징후


안 씨는 올해 1월부터 정신이상 징후를 수차례 보였다. 안 씨는 1월 17일 진주자활센터에 난입해 직원 2명을 폭행한 혐의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폭행 이유는 지난해 12월 센터에 상담하러 갔다가 당시 근무자들이 타준 커피를 마셨는데 몸에 부스럼이 났다는 것이었다. 지난달 10일에는 진주 시내에서 행인을 폭행해 벌금 200만 원의 처벌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 안 씨는 갑자기 집에서 베란다 밖을 향해 “윗집에서 벌레를 던진다”며 욕설을 퍼붓고 소란을 피웠다. 당시 관리사무소에서 윗집을 가봤더니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안 씨는 2015년 1월부터 진주의 한 정신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다가 2016년 7월 이후 치료를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할인 진주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 측은 “안 씨 관련 기록이 없어 따로 관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안 씨가 정신병력 기록을 센터로 보내는 걸 거부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그동안 안 씨의 정신질환 전력을 몰랐다가 이번 ‘묻지 마 살인’ 사건이 터지고서야 알게 됐다고 해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행법상 개인정보 침해 소지가 있어 정신질환으로 인한 전과가 있더라도 일일이 영장을 받아 건강보험 기록을 확인하지 않으면 병력을 알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진주=강성명 smkang@donga.com / 조동주·김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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