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남용 문건 작성했던 현직판사 “임종헌 지시로 이정현 만나” 법정 증언
“사실상 법원행정처 분위기가 경직돼 있고 그런 분위기에서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예상됐습니다.”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08호 소법정.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60·사법연수원 16기·수감 중)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시진국 창원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46·32기)는 이렇게 말했다.
시 부장판사는 2014년 2월∼2016년 2월 대법원의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으로 일했다. 당시 기획조정실장이던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상고법원 관련 BH(청와대) 대응전략’ 등의 문건을 작성했다. 시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법관으로서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감봉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또 임 전 차장이 회식 자리에서 우병우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법원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 달라. 상고법원을 도와 달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증언했다. 임 전 차장은 당시 상고법원 도입의 걸림돌 중 하나로 우 전 수석의 ‘반(反)법원 정서’를 꼽았다. 시 부장판사와 함께 보고서를 작성한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42·32기)는 시 부장판사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할매(박 전 대통령)의 사법부 불신 원인은 정말 소설입니다”라고 적은 사실도 드러났다.
시 부장판사는 2015년 6월 임 전 차장의 지시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뒤 국회의원 신분이던 이정현 의원을 만나 사법 한류와 관련한 세부 자료를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시 부장판사의 보고를 받은 뒤 “이건 바로 BH(청와대)에 보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시 부장판사는 주장했다. 그는 “피고인에게 ‘제가 가서 만나는 게 맞는 것이냐’고 반문했더니 피고인이 ‘이미 얘기가 다 됐다’고 말했다”고도 했다.
김예지 기자 ye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