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구 ‘노숙인 일자리 사업’… 하루 3시간 영등포역 등 청소
“떳떳하게 번 돈으로 살고 싶고 다른 분도 우릴 보고 힘 얻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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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노숙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정영주 씨가 12일 영등포역 인근 자전거 거치대 주변을 청소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회사를 나온 지 5년 만에 그가 택한 길은 평생 해본 적 없는 일용직노동이었다. 찜질방에서 쪽잠을 자고 인력시장에 나가는 생활이 이어졌다. 야속하지만 당연하게도 그의 몸은 병들어갔다. 혼자서 잠잘 곳을 마련하기조차 어려워진 지난해 10월 영등포역으로 왔다. 그렇게 노숙인이 됐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노숙인이 되고 그의 삶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다른 노숙인들의 텃세와 역을 오가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견디며 찬 바닥에서 지낸 지 한 달쯤 지나자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다.
그는 이달부터 영등포구에서 시작한 ‘영등포역 노숙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다. 하루 3시간씩 영등포역사와 역 인근을 돌며 쓰레기를 줍는다. 김 씨를 비롯해 노숙인 5명이 일한다.
“청소를 하고 있으면 술 마시던 노숙인들이 자리를 비켜 주기도 하고 응원해 주기도 해요. 청소하는 저를 보면서 다른 노숙인들도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이 일을 통해 저는 세상 속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고 그러면 제 자리를 또 다른 노숙인이 채워서 희망을 얻길 바랍니다.”
김 씨와 함께 일하는 정영주 씨(69)도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희망을 얻고 기회를 찾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씨는 중국음식집을 운영하다 2년 전에 배달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배달을 하다 사람이 숨지는 사고를 냈다. 사고 수습에 가진 돈을 다 쓰고 난 그는 지난해 5월 노숙인으로 전락했다.
아직 받지는 않았지만 일한 지 한 달이 되면 김 씨와 정 씨는 60만 원 남짓한 돈을 월급으로 손에 쥔다. 현재 지내는 고시원 월세를 내고 식비에 쓰면 남는 돈은 거의 없다. 영등포구와 함께 노숙인 일자리 사업을 진행하는 옹달샘드롭인센터 이민규 사회복지사는 “보호시설이나 역에서 자면서 무료 급식을 먹어도 살 수는 있다. 저분들은 자기가 번 돈으로 밥을 먹으려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어떤 방식으로 밥을 먹을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나는 떳떳하게 밥 먹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비슷한 노숙인으로 비칠지라도 내일의 모습은 바꿀 수 있다는 의지가 묻어났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