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망가져도 산하는 여전하여/ 성 안에 봄이 들어 초목만 무성하다.
시국을 생각하니 꽃을 보아도 눈물이 흐르고/ 이별이 한스러워 새 소리에도 놀란다.
봉화는 석 달 내내 사그라지지 않으니/ 집에서 오는 편지는 만금의 가치.
흰머리 긁적이자 더욱 짧아져/ 아예 비녀조차 꽂지 못할 듯.’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感時花淺淚 恨別鳥驚心. 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 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춘망·春望‘, (두보·杜甫·712~770)
안록산의 반군이 수도 장안 부근까지 쳐들어오자 당 현종은 사천으로 피신했고, 그 와중에 태자(숙종)가 황위를 계승했다. 소식을 접한 두보는 가족을 친척집에 맡겨둔 채 황제를 모시겠다는 일념으로 숙종의 행재소(行在所)로 향했고, 도중에 반군의 포로로 잡혀 장안으로 압송됐다. 당시 그는 미관말직인데다 명성도 높지 않았던 터라 곧 풀려났다. 시는 장안이 함락된 이듬해 봄, 사그라지지 않는 전화(戰火) 앞에 그저 무력하기만 한 시인의 탄식을 담았다.
무성한 초목, 꽃과 새는 으레 희망이나 아름다움으로 각인되지만 난세의 혼돈을 온몸으로 경험한 시인에게는 암울 그 자체다. 하여 시제 춘망은 봄 풍경의 조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시대의 봄‘에 대한 갈망이다. 시의 제3, 4구를 “시절을 생각해서 꽃조차 눈물 뿌리고, 이별이 한스러워 새조차 마음을 못 가눈다”고 의인화 해 해석하기도 한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